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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는 조선 후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이순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며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인수 (李仁秀)
이인수는 조선 후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이순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며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이재항 (李載恒)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통어영은 1633년(인조 11)에 경기·충청·황해도 등의 수군을 관할하기 위해 교동에 설립된 수군 최고 사령부이다. 17세기 초 임진왜란을 계기로 북방의 여진이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인조는 청에 대한 강경책을 수립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의 수비를 위해 경기 화량에 위치한 수영을 한강의 길목에 있는 교동으로 옮겼다. 이후 경기 수영을 통어영으로 승격하고 경기 수사가 통어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17세기 후반 북방 정세가 안정되자 통어영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병인양요 이후 해방영이 설치되면서 통어영은 폐지되었다.
통어영 (統禦營)
통어영은 1633년(인조 11)에 경기·충청·황해도 등의 수군을 관할하기 위해 교동에 설립된 수군 최고 사령부이다. 17세기 초 임진왜란을 계기로 북방의 여진이 중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인조는 청에 대한 강경책을 수립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강화도의 수비를 위해 경기 화량에 위치한 수영을 한강의 길목에 있는 교동으로 옮겼다. 이후 경기 수영을 통어영으로 승격하고 경기 수사가 통어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17세기 후반 북방 정세가 안정되자 통어영의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병인양요 이후 해방영이 설치되면서 통어영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