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수는 조선 후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이순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며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인수(李仁秀)의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빈(聖賓)이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7대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홍의(李弘毅),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언상(李彦祥)이다. 아버지는 금위대장(禁衛大將)・ 총융사(摠戎使) 등을 지낸 이한응(李漢膺)이며,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능성구씨(綾城具氏) 구선장(具善長)의 딸과 혼인하였다.
1777년(정조 1) 백령(白翎) 첨사(僉使)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영종(永宗) 첨사 등을 거쳐 1779년(정조 3)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에 올랐다. 1790년(정조 14) 남병사(南兵使)를 역임하였고, 이후 강계부사(江界府使) · 회령부사(會寧府使) 등 지방관으로 활동하며 관방 요충지에서 경험을 쌓았다.
1800년(정조 24)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는데, 재임 기간에 제포(薺浦) 등 5개진의 환곡과 군정의 폐단을 조사하여 백성들이 중첩해서 군역의 부담을 지는 일이 없도록 고르게 정비할 것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1803년에는 총융사에 올랐고, 좌우포도대장을 거쳐 1807년(순조 7) 금위대장에 임명되었다. 이때 군율을 엄하게 못한 책임으로 그해 2월 삭직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의 배려로 다시 총융사 · 금위대장 등에 임명되었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다. 그해 8월 왕이 70세 이상의 대신(大臣)과 경재(卿宰)에게 의관을 보내 진찰하게 하였는데, 여기에 포함되어 찬물(饌物)을 하사받았다. 이듬해에 12월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