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봉은 조선 후기 고경명의 후손으로 정조~순조 때 지평, 부수찬,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98년(정조 22) 호남 유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령과(功令科)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다음 해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조는 그가 고경명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우대해 주었다. 1815년 고정봉은 정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의미를 담아 공령과의 시행 과정과 감회 등을 기록한 「등과시말기」를 남겼다.
본관은 장택(長興), 자는 명국(鳴國), 호는 수촌(水村)이다.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7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고가익(高可翼), 할아버지는 고한정(高漢貞)이다. 아버지는 고영(高暎)이며, 어머니는 김기서(金麒瑞)의 딸이다.
1798년(정조 22) 조정에서는 숭문정책(崇文政策) 및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호남의 유생을 대상으로 공령과(功令科)를 시행하였다. 고정봉은 4월 13일 광주목에서 시행된 공령과에서 69명의 응시자 가운데 장원을 차지하였고, 직부전시(直赴殿試)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에 고정봉은 1800년(정조 24년) 58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조는 그가 고경명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우대해 주었고,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된 다음 날 전라도사(全羅都事)에 제수(授授)되었다. 이후 지평, 비인현감, 정언, 대동찰방, 부수찬 등을 거쳐 1819년 홍문관교리에 올랐다.
1813년(순조 13)에는 「사영선승소잉겸진구폐소(辭瀛選承召仍兼陳捄弊疏)」를 올려 ‘결역(結役)・조적(糶糴)・균세(均稅)・조전(漕轉)・군정(軍政)・관방(關防)・법령(法令)’을 사회 폐단으로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관직보다는 학문에 뜻을 두었고, 효행과 문장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1815년에는 정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의미를 담아 공령과의 시행 과정과 감회 등을 자세히 기록한 「등과시말기(登科始末記)」를 기록으로 남겼다.
시문집으로 7권 3책의 『 수촌집(水村集)』이 전한다. 1930년 5대손 광수(光洙)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