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풍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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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 입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한 쌍의 장승. 돌장승.
관룡사 석장승 (觀龍寺 石장승)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관룡사 입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한 쌍의 장승. 돌장승.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명당가 (明堂歌)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묘청 (妙淸)
묘청은 고려전기 정지상, 백수한 등의 지지로 서경천도론을 제기한 승려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35년(인종 13)에 사망했다. 풍수지리와 도참사상을 익힌 후 이를 바탕으로 상경은 이미 기운이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있으니 그곳으로 천도하자고 주장했다. 이자겸의 난으로 왕궁이 불타고 민심이 동요하던 상황에서 인종의 호응을 얻어 천도 준비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문신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제 천도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조광·유참 등과 함께 국호를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여 난을 일으켰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고려 국조신화」는 고려를 세운 왕건의 선조 6대들의 내력과 자취를 다룬 고려의 건국신화이다. 왕건의 6대조 호경, 5대조 강충, 4대조 보육, 3대조 진의, 할아버지 작제건, 아버지 용건을 각기 주인공으로 삼은 여섯 가지 이야기이다. 『고려사』 「고려세계」에 전하고, 선계의 혈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고려 왕권의 신성성을 나타내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선조의 행적에서는 신화적 상징이 드러나고, 왕건의 투쟁과 승리에서는 경험적 세계를 서술하는 역사성이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고려 국조신화 (高麗 國祖神話)
「고려 국조신화」는 고려를 세운 왕건의 선조 6대들의 내력과 자취를 다룬 고려의 건국신화이다. 왕건의 6대조 호경, 5대조 강충, 4대조 보육, 3대조 진의, 할아버지 작제건, 아버지 용건을 각기 주인공으로 삼은 여섯 가지 이야기이다. 『고려사』 「고려세계」에 전하고, 선계의 혈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고려 왕권의 신성성을 나타내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선조의 행적에서는 신화적 상징이 드러나고, 왕건의 투쟁과 승리에서는 경험적 세계를 서술하는 역사성이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상지관은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풍수지리 전문 관원이다. 음양과의 지리학 시험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풍수의 능력을 갖추어서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하게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지관은 각 능을 봉심할 때 범철(泛鐵) 등의 일을 담당하였으며, 궁궐터, 능 자리, 태실(胎室), 입비(立碑), 축성(築城) 등의 지상(地相)을 살폈다.
상지관 (相地官)
상지관은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풍수지리 전문 관원이다. 음양과의 지리학 시험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풍수의 능력을 갖추어서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하게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지관은 각 능을 봉심할 때 범철(泛鐵) 등의 일을 담당하였으며, 궁궐터, 능 자리, 태실(胎室), 입비(立碑), 축성(築城) 등의 지상(地相)을 살폈다.
읍취락은 조선시대 군현제도가 시행되던 과정에서 형성된 말단 지방행정의 중심 취락이다. 대체로 성곽에 입지하였기 때문에 읍성취락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4부(府), 4대도호부(大都護府), 20목(牧), 43도호부, 82군(郡), 125현(縣)을 두었는데 부·목·군·현의 소재지가 읍취락이다. 대체로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아 배산임수의 지형에 입지하였으며 관아를 중심으로 주변에 민가가 모여 취락을 이루었다. 군사취락으로서의 성격도 있어서 성벽을 구축하고 참호를 파서 방어 기능을 강화하거나 읍성 가까이에 산성을 두었다.
읍취락 (邑聚落)
읍취락은 조선시대 군현제도가 시행되던 과정에서 형성된 말단 지방행정의 중심 취락이다. 대체로 성곽에 입지하였기 때문에 읍성취락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밑에 4부(府), 4대도호부(大都護府), 20목(牧), 43도호부, 82군(郡), 125현(縣)을 두었는데 부·목·군·현의 소재지가 읍취락이다. 대체로 풍수지리의 영향을 받아 배산임수의 지형에 입지하였으며 관아를 중심으로 주변에 민가가 모여 취락을 이루었다. 군사취락으로서의 성격도 있어서 성벽을 구축하고 참호를 파서 방어 기능을 강화하거나 읍성 가까이에 산성을 두었다.
지리전서동림조담은 조선시대 관상감 관원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이용된 풍수지리서이다. 상권과 하권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으며, 풍수지리와 관련한 여러 내용을 24개로 구분하여 기술해 놓았다.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되었고, 전해지는 간행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며,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풍수지리서로 간주되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 학술적 의의가 크다.
지리전서동림조담 (地理全書洞林照膽)
지리전서동림조담은 조선시대 관상감 관원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이용된 풍수지리서이다. 상권과 하권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으며, 풍수지리와 관련한 여러 내용을 24개로 구분하여 기술해 놓았다.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되었고, 전해지는 간행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며,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풍수지리서로 간주되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 학술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