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학술원"
검색결과 총 10건
김재원은 해방 이후 『감은사』, 『한국지석묘연구』 등을 저술한 미술사학자이다. 1927년 함흥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독일 뮌헨대학 철학부에서 교육학과 고고학을 전공했다. 문화재 위원(현, 문화유산 위원)을 비롯하여 UNESCO한국위원회 위원, 한일 회담 대표 등을 역임했다. 최초로 감은사지와 금강사지를 발굴하는 등 과감한 학술 조사를 실시했다. 감은사지 발굴 조사보고서인 『감은사』와 지석묘 발굴 조사보고서 『한국지석묘연구』는 발굴 조사 보고서의 규범이 되고 있다. 광복 후 국립박물관장에 취임하여 1970년 퇴임하기까지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재원 (金載元)
김재원은 해방 이후 『감은사』, 『한국지석묘연구』 등을 저술한 미술사학자이다. 1927년 함흥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독일 뮌헨대학 철학부에서 교육학과 고고학을 전공했다. 문화재 위원(현, 문화유산 위원)을 비롯하여 UNESCO한국위원회 위원, 한일 회담 대표 등을 역임했다. 최초로 감은사지와 금강사지를 발굴하는 등 과감한 학술 조사를 실시했다. 감은사지 발굴 조사보고서인 『감은사』와 지석묘 발굴 조사보고서 『한국지석묘연구』는 발굴 조사 보고서의 규범이 되고 있다. 광복 후 국립박물관장에 취임하여 1970년 퇴임하기까지 박물관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김철준은 해방 이후 「한국고대사회 연구」, 「한국문화사론」, 「한국문화전통론」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3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역사학회 창립에 동참하였다.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 고증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해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학 발전과 문화재(현, 국가유산)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한국사연구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와 논문을 엮어서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하였다.
김철준 (金哲埈)
김철준은 해방 이후 「한국고대사회 연구」, 「한국문화사론」, 「한국문화전통론」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3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역사학회 창립에 동참하였다. 일본이 주장한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고, 문헌 고증학의 방법론적 한계를 극복해 자주적이고 과학적인 새로운 학풍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학 발전과 문화재(현, 국가유산) 보호에도 노력을 기울여 한국사연구회와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위원회(현, 문화유산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하였다. 저서와 논문을 엮어서 『일계전집(一溪全集)』(4책)으로 간행하였다.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은 한문 불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불교 기관이다. 1962년 통합종단이 승가 교육, 포교, 역경을 종단의 3대 사업으로 선언한 후 1964년 동국대학교에 설립되었다. 동국역경원은 출범 후 현재까지 기관의 핵심 사업인 고려대장경 한글 번역을 완간하고 다양한 한문 불전을 번역하고 출간하였다. 기관은 향후 사업의 방향을 한문 불전의 번역 및 재역에서 나아가 한문 불전의 전산화 및 메타버스화로 설정하고 있다.
동국역경원 (東國譯經院)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은 한문 불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불교 기관이다. 1962년 통합종단이 승가 교육, 포교, 역경을 종단의 3대 사업으로 선언한 후 1964년 동국대학교에 설립되었다. 동국역경원은 출범 후 현재까지 기관의 핵심 사업인 고려대장경 한글 번역을 완간하고 다양한 한문 불전을 번역하고 출간하였다. 기관은 향후 사업의 방향을 한문 불전의 번역 및 재역에서 나아가 한문 불전의 전산화 및 메타버스화로 설정하고 있다.
백남운은 일제강점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 등을 저술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1895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 하에서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경제에 관한 경제사적 연구에 몰두하여 큰 업적을 남김으로써 한국의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구실을 했다.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했고 조선사정연구회사건으로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조선학술원과 민족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민족주의민족전선,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교육상·과학원 원장·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백남운 (白南雲)
백남운은 일제강점기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 등을 저술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이다. 1895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 하에서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경제에 관한 경제사적 연구에 몰두하여 큰 업적을 남김으로써 한국의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구실을 했다.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전개했고 조선사정연구회사건으로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조선학술원과 민족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민족주의민족전선,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교육상·과학원 원장·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했다.
외자총국 비서실장, 기획처장, 농림부장관, 한일회담 대표 등을 역임한 관료·기업인.
원용석 (元容奭)
외자총국 비서실장, 기획처장, 농림부장관, 한일회담 대표 등을 역임한 관료·기업인.
해방 이후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장, 대한약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학자. 약학자.
박수선 (朴秀善)
해방 이후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장, 대한약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학자. 약학자.
해방 이후 국립농업기술원 원장,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장 등을 역임한 학자. 농학자.
박승만 (朴勝萬)
해방 이후 국립농업기술원 원장, 동국대학교 농과대학장 등을 역임한 학자. 농학자.
해방 이후 『역사의 방법』, 『고대올림픽』, 『아테네 민주정치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양병우 (梁秉祐)
해방 이후 『역사의 방법』, 『고대올림픽』, 『아테네 민주정치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해방 이후 『생화학』, 『유기화학』 등을 저술한 학자. 생화학자.
이기영 (李基寧)
해방 이후 『생화학』, 『유기화학』 등을 저술한 학자. 생화학자.
해방 이후 『완전 동양사』, 『아시아의 역사상』, 『동아교섭사의 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고병익 (高柄翊)
해방 이후 『완전 동양사』, 『아시아의 역사상』, 『동아교섭사의 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