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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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공인은 고려 전기 호부원외랑,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자겸에 반대하고 묘청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1116년(예종 11) 송나라 사행에서 귀국하면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고려에 전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문공인 (文公仁)
문공인은 고려 전기 호부원외랑,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자겸에 반대하고 묘청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묘청의 난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들과 거리를 두었다. 1116년(예종 11) 송나라 사행에서 귀국하면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을 고려에 전하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고려전기 공부상서, 양주방어사,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관리. 척신(戚臣).
임극정 (任克正)
고려전기 공부상서, 양주방어사,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관리. 척신(戚臣).
최유청은 고려시대에 중서시랑평장사, 수사공 집현전대학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학문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의종 대에 병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170년(의종 24) 무신란의 정변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고, 명종 대에도 고위직을 유지하였다. 이는 최유청이 개인적 덕망도 있었으며, 집권 무신 권력자와 맺었던 친분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최유청 (崔惟淸)
최유청은 고려시대에 중서시랑평장사, 수사공 집현전대학사 판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학문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의종 대에 병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하였는데, 1170년(의종 24) 무신란의 정변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지 않고, 명종 대에도 고위직을 유지하였다. 이는 최유청이 개인적 덕망도 있었으며, 집권 무신 권력자와 맺었던 친분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