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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모양성제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 일대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인 모양성을 기반으로 개최하는 마을축제이다. 모양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에 간다고 전해지는 성밟기 풍속이 있다. 이 풍속이 모양성제로 계승되었다. 1974년 ‘군민의 날’ 행사로 시작하여 2005년부터는 축제의 명칭을 '고창모양성제'로 바꾸었다. 모양성 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5일간 행해진다. 전국 유일의 답성돌이와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 재현, 성쌓기 재현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역사 및 민속자료를 축제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고창모양성제 (高敞牟陽城祭)
고창모양성제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 일대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인 모양성을 기반으로 개최하는 마을축제이다. 모양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에 간다고 전해지는 성밟기 풍속이 있다. 이 풍속이 모양성제로 계승되었다. 1974년 ‘군민의 날’ 행사로 시작하여 2005년부터는 축제의 명칭을 '고창모양성제'로 바꾸었다. 모양성 보존회 주관으로 매년 음력 9월 9일을 전후로 5일간 행해진다. 전국 유일의 답성돌이와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 재현, 성쌓기 재현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지역의 문화유산과 역사 및 민속자료를 축제로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시대 왕·왕비·왕세자 등의 행차시에 사용된 의장기물(儀仗器物).
개 (蓋)
조선시대 왕·왕비·왕세자 등의 행차시에 사용된 의장기물(儀仗器物).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읍 토성리에서 음력 정월 보름에 관원들의 행차의식과 관아의 권력행사 및 재판과정 등을 모방하여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1900년대 초기까지 성행했다가 토성리 출신 월남민들에 의해 19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발표되는 등 남한에서도 월남민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고제당(古祭堂)의 서낭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놀이는 닐리리춤, 치죄(治罪), 관원의 행차, 치제(致祭), 횃불싸움, 사자놀이의 순으로 진행된다. 경상북도 안동과 의성, 청송 등지에서는 서당놀이로 불렀다.
토성 관원놀이 (土城 官員놀이)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읍 토성리에서 음력 정월 보름에 관원들의 행차의식과 관아의 권력행사 및 재판과정 등을 모방하여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1900년대 초기까지 성행했다가 토성리 출신 월남민들에 의해 199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발표되는 등 남한에서도 월남민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고제당(古祭堂)의 서낭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놀이는 닐리리춤, 치죄(治罪), 관원의 행차, 치제(致祭), 횃불싸움, 사자놀이의 순으로 진행된다. 경상북도 안동과 의성, 청송 등지에서는 서당놀이로 불렀다.
고려시대 국왕의 행차시에 의물기계(儀物器械)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특수관서.
노부도감 (鹵簿都監)
고려시대 국왕의 행차시에 의물기계(儀物器械)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특수관서.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정리사 (整理使)
정리사는 조선시대에 국왕의 행차와 관련된 제반 업무를 총괄하던 관리이다. 조선 초에는 임시직이었으나 정조 대에는 국왕의 화성(華城) 행차 시에 행궁 및 일정을 담당하기 위해 별도로 정리소(整理所)를 만들고 그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상설 관서가 되었다. 이는 정조 사후 장용영의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관직이 대한제국기인 1903년에 평양 풍경궁의 관리를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관리로 칙임관을 임명하였다.
『화성일기(華城日記)』는 1795년 이희평(李羲平)이 지은 일기체 기행록이다. 이희평이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구경하고 난 뒤, 그 일련의 과정과 풍경을 일기체로 남긴 기록이다. 엿새 동안 정조의 행차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면서 평소 보기 힘들었던 구경거리를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기록 가운데 자신의 심경을 함께 피력한 부분에서는 일기 문학의 문학성도 함께 엿보인다. 원본은 현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4년에 강한영(姜漢永)의 역주본이 출간되었다.
화성일기 (華城日記)
『화성일기(華城日記)』는 1795년 이희평(李羲平)이 지은 일기체 기행록이다. 이희평이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구경하고 난 뒤, 그 일련의 과정과 풍경을 일기체로 남긴 기록이다. 엿새 동안 정조의 행차를 가까이에서 구경하면서 평소 보기 힘들었던 구경거리를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기록 가운데 자신의 심경을 함께 피력한 부분에서는 일기 문학의 문학성도 함께 엿보인다. 원본은 현재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1974년에 강한영(姜漢永)의 역주본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