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795년, 이희평(李羲平, 1772~1839)이 지은 일기체 기행록.
개설
내용
이 때 왕실의 친인척들도 많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지은이 이희평도 형 이희갑(李羲甲)과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이 행차에서 성대한 잔치 구경을 하고, 2월 17일에 귀경한 전말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지은이 스스로 밝힌 저술 동기는 “차마 싫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채이어 일필로 난초(亂草)하여 말이 된지 만지 황잡(荒雜) 촉잡(促雜)하니 짐작하여 보고 흉보지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한 가지 의심되는 바는 이 작품 첫머리에서 “정종대왕 능행 시 세재을묘 이월 초구일에”라고 한 점이다. 그러나 뒤에 이 작품을 베끼던 사람이 ‘정종대왕’을 고쳐 쓴 것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적어도 순조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야 옳다.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로 보아,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옮겨 베끼면서 고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작자의 특별한 관심사는 한강 위의 휘황한 주교(舟橋), 배다리에서의 검문, 번화한 화성 시내 광경, 임금의 거동경(擧動景), 알성시(謁聖試)의 과거경(科擧景), 행궁 근경(行宮近景), 왕과 혜경궁 홍씨가 현륭원을 살피는 광경, 왕과 백관들의 군례(軍禮) 받는 광경 등이다.
또한, 각종 의장(儀仗), 외빈(外賓)들의 알현, 대풍류경(大風流景), 정조의 한시(漢詩)와 그에 차운한 지은이의 한시, 밤 풍악, 노인연(老人宴) 광경, 임금이 돌아오는 광경, 지은이가 밤길 험로를 지난 일, 지은이가 고향 남계(南溪)에 들른 느낌 등도 다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강한영, 『의유당일기·화성일기』(신구문화사, 1974)
논문
- 서종남, 「《화성일기》 문학론」(『동방학』 3,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199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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