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국문필사본. 통문관(通文館) 주인 이겸노(李謙魯)가 1947년 10월 서울대학교 조선어문학연구회 주관 도서전시회에 출품하여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뒤에 강한영(姜漢永)이 교주하여 전문도 널리 공개되었다.
정조 19년(1795) 1월 21일은 뒤주 안에 갇혀서 원통히 자결한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회갑일이다. 또한, 6월 18일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의 회갑일이다. 따라서 정조는 1월 21일 경모궁(景慕宮)에 친히 나가서 위판(位板)에 재배하고,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존호를 바친다. 2월 9일에는 자궁(慈宮)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지금의 수원(水原)인 화성의 현륭원(顯隆園) 능행길에 올라 15일에 환궁하였다.
이 때 왕실의 친인척들도 많이 동행하게 되어 지은이도 형 이희갑(李羲甲)과 함께 따라갔다가 성대한 잔치구경을 하고, 2월 17일에 귀경한 전말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지은이 스스로 밝힌 저술동기는 “차마 싫은 것을 사람들에게 보채이어 일필로 난초(亂草)하여 말이 된지 만지 황잡(荒雜) 촉잡(促雜)하니 짐작하여 보고 흉보지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남의 뜻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심되는 바는 이 작품 첫머리에서 “정종대왕 능행시 세재을묘 이월 초구일에”라고 하였는데, 뒤에 이 작품을 베끼던 사람이 ‘정종대왕’을 고쳐 쓴 것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적어도 순조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야 옳다.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로 보아,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옮겨 베끼면서 고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작자의 특별한 관심사는 한강 위의 휘황한 주교(舟橋), 배다리에서의 검문, 번화한 화성시내 광경, 임금의 거둥경(擧動景), 알성시(謁聖試)의 과거경(科擧景), 행궁근경(行宮近景), 왕과 자궁의 원소(園所) 봉심(奉審), 왕과 백관들의 군례(軍禮) 받는 광경 등이다.
또한, 각종 의장(儀仗), 외빈(外賓)들의 알현, 대풍류경(大風流景), 정조의 한시(漢詩)와 그에 차운한 지은이의 한시, 밤 풍악, 노인연(老人宴) 광경, 임금이 돌아오는 광경, 지은이가 밤길 험로를 지난 일, 지은이가 고향 남계(南溪)에 들른 느낌 등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능행일기로는 현재 유일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한편, 이와 비슷한 능행가사로 「수원능행행가(水原陵幸行歌)」라는 작품이 있으나, 극히 짧은 일부분만이 전하는 불완전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