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혁거세"
검색결과 총 5건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국신화는 국가의 창업 기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신화이다. 신화는 대체로 우주·인간·문명의 기원을 다루는데, 건국신화는 국가라는 형태의 문명 기원을 다루는 것으로 신화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나타난 신화 형태이다. 건국신화의 형식과 구조는 일정하지 않지만, 건국시조가 하늘에서 강림하여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운다는 두 가지 요건이 기본이 되며, 이 기본형을 부연·확대하거나 부수적인 신비스러운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화 속의 건국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지상의 왕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춘 존재이다.
건국신화 (建國 神話)
건국신화는 국가의 창업 기원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신화이다. 신화는 대체로 우주·인간·문명의 기원을 다루는데, 건국신화는 국가라는 형태의 문명 기원을 다루는 것으로 신화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나타난 신화 형태이다. 건국신화의 형식과 구조는 일정하지 않지만, 건국시조가 하늘에서 강림하여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운다는 두 가지 요건이 기본이 되며, 이 기본형을 부연·확대하거나 부수적인 신비스러운 내용을 첨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화 속의 건국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지상의 왕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춘 존재이다.
삼국시대 신라 제1대 혁거세거서간의 왕비.
알영부인 (閼英夫人)
삼국시대 신라 제1대 혁거세거서간의 왕비.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
신라 오묘 (新羅 五廟)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