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회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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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례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아 진행되는 의례이자 잔치이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하였었다. 국왕과 왕세자, 문무관원, 일본, 여진 등의 외방객사가 참석 대상자였다. 회례는 조정에서 시행되는데, 네 번 절하는 배례를 앞뒤로 시행하고, 본격적인 절차는 왕세자와 관원의 대표자가 각각 헌수례(獻壽禮)를 행하고, 참석자가 연회석으로 이동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는 행주로 진행되었다. 각 절차에는 정제된 음악과 춤이 더해져서 군신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회례 (會禮)
회례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아 진행되는 의례이자 잔치이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하였었다. 국왕과 왕세자, 문무관원, 일본, 여진 등의 외방객사가 참석 대상자였다. 회례는 조정에서 시행되는데, 네 번 절하는 배례를 앞뒤로 시행하고, 본격적인 절차는 왕세자와 관원의 대표자가 각각 헌수례(獻壽禮)를 행하고, 참석자가 연회석으로 이동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는 행주로 진행되었다. 각 절차에는 정제된 음악과 춤이 더해져서 군신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문명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문무와 함께 등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곡 이름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였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문명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문덕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문덕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한 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 부른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문명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문명지곡 (文明之曲)
「문명지곡」은 조선 전기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회례와 양로연에서 문무와 함께 등가가 아뢰던 아악곡이다. 1432년에 곡 이름과 악장이 처음 지어졌으나 이듬해에 기존 악장을 일부 수정하였다. 『악학궤범』에 전하는 「문명지곡」은 총 4자 16구로서 전반 8구는 태조의 문덕을, 후반 8구는 태종의 문덕을 찬양하였다. 두 악장은 각각 1자1음씩 32음이 한 곡을 이루었고, 이를 반복 연주함으로써 두 수의 악장을 노래 부른다. 세종 말기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문명지곡」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휴안지악」은 조선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와 빈례에 연주되었던 아악곡이다. 1431년 예조에서 올린 회례의주에서 처음 정해졌으며, 가사는 4자6구로서 1자1음씩 총 24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악보는 신제 조회아악의 ‘황종궁22’이며, 실제 연주에서는 행사가 있는 달의 월률(月律)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황종궁22의 12궁 중 어느 한 궁으로 연주하였다. 세종 후기에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조회아악이 자연 폐기됨에 따라 여타의 조회아악과 함께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
휴안지악 (休安之樂)
「휴안지악」은 조선 세종대에 처음 지어져 가례와 빈례에 연주되었던 아악곡이다. 1431년 예조에서 올린 회례의주에서 처음 정해졌으며, 가사는 4자6구로서 1자1음씩 총 24음으로 이루어졌다. 그 악보는 신제 조회아악의 ‘황종궁22’이며, 실제 연주에서는 행사가 있는 달의 월률(月律)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황종궁22의 12궁 중 어느 한 궁으로 연주하였다. 세종 후기에 4종의 신악이 창제된 뒤로 조회아악이 자연 폐기됨에 따라 여타의 조회아악과 함께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