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례 ()

유교
의례·행사
임금과 신하가 기쁨을 함께한다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고 진행하는 유교 국가 의례.
이칭
이칭
회(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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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회례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아 진행되는 의례이자 잔치이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가장 큰 규모로 시행하였었다. 국왕과 왕세자, 문무관원, 일본, 여진 등의 외방객사가 참석 대상자였다. 회례는 조정에서 시행되는데, 네 번 절하는 배례를 앞뒤로 시행하고, 본격적인 절차는 왕세자와 관원의 대표자가 각각 헌수례(獻壽禮)를 행하고, 참석자가 연회석으로 이동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는 행주로 진행되었다. 각 절차에는 정제된 음악과 춤이 더해져서 군신이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정의
임금과 신하가 기쁨을 함께한다는 군신동연의 의미를 담고 진행하는 유교 국가 의례.
연원 및 변천

군주가 오락에 매몰되어 통치를 그르치는 것을 유연황망(流連荒亡)이라 하여 『맹자(孟子)』에서 경계하였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의 잔치를 제도화하는 시도가 있었다. 공식적인 의례로서 정형화된 방식으로 잔치를 진행함으로써, 무절제한 황음이 되지 않도록 틀을 마련한 것이 조선의 회례(會禮)였다. 회례는 회(會)가 공식적인 용어이고, ‘회(會)’의 의례성을 강조할 때, 회례로 지칭하기도 하였다. 주1과 동지, 국왕 탄일에 시행되는 회례가 가장 규모가 큰 행사였다.

본격적으로 유교 국가 의례 정비에 관심을 가졌던 태종(太宗)은 1402년 잔치의 종류에 따라 사용되는 음악과 춤을 지정하였다. 군신동연(君臣同宴)으로 의미를 특정하고 본격적으로 절차와 음악 사용을 정비한 것은 1431년(세종 13)이었다. 회례를 의례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각 절차에 조응하는 음악 사용과 의례가 진행되는 공간의 구성 등 다양한 정비가 이루어졌다.

회례에서는 국왕에게 술을 올려 장수를 기원하는 두 번의 헌수(獻壽)를 진행하고, 일곱 차례 술을 돌리는 행주(行酒)가 이어졌다. 행주에서는 국왕과 참석자가 술과 음식을 섭취하고, 각종의 공연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였다. 회례에는 왕세자가 참석하도록 하였는데, 왕세자와 나머지 종친과 관원의 의례 행위를 구분하여 절차를 구성하였다. 이 무렵 새롭게 정비된 아악(雅樂)이 용악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세조대를 거치면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파생된 신악과 새롭게 구성된 속악을 위주로 회례 음악이 조정되었다. 성종(成宗) 때 간행되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회례 의식은 정형화된 의식 절차로 재구성되면서, 아악이 배제되는 회례 의식이 작성되었다.

절차

『국조오례의』 회례 의식은 그동안의 정비, 재정비 과정을 거쳐서 정형화된 형태로 절차가 구성되었다. 마당에는 절하는 주2를 배치하였고, 주3할 때는 별도의 연회석이 신분을 고려하여 지정되었다. 회례는 국왕이 주관하는 의례였고, 참석자는 왕세자와 종친, 문무 관원, 외방객사(外邦客使)로 구분되었다.

2품 이상의 고위 관원은 국왕 어좌 인근의 정전(正殿)에 배치되었고, 각각 그룹을 나누어 월대와 마당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일본 · 여진 등의 객사(客使)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마당의 가장 바깥에 배정되었다. 이러한 자리 배치는 국왕과의 친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주4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정삭과 동지, 국왕 탄일에 시행되는 회례가 가장 규모가 크지만, 공식적인 잔치는 회례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진행 공간은 원칙적으로 정전이 있는 조정이었다. 세 번째 술잔부터는 행사 때마다 사용되는 악곡과 노래, 춤을 국왕에게 보고하여 정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조처는 악곡의 지정을 통하여 행사의 격과 방향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세종(世宗) 때까지 지정곡은 아악으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세종 말년 신악이 제정되면서, 점차 조선 고유의 속악으로 전체 음악이 대체되었다. 여악(女樂)을 사용하는 문제는 심각하게 논의되었지만, 조선의 본속(本俗)으로 간주되어 불가가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행주의 앞과 뒤에 각각 네 번 절하는 배례(拜禮)를 배치하였는데, 이러한 형식화를 통해 조의(朝儀)의 형태를 갖추도록 하였다. 회례는 왕세자를 포함한 전체 관원이 사배례를 함으로써 시작된다. 배례를 마친 후, 왕세자가 전으로 올라가서 첫 번째 헌수를 올리고, 이어서 가장 서열이 높은 관원인 반수(班首)가 두 번째 헌수를 시행한다. 국왕이 답사하여 헌수가 종료되면, 참석자는 지정된 연회석으로 이동하고, 본격적으로 술을 돌리는 행주가 진행된다.

아홉 차례 행주 중에는 술과 안주가 번갈아 제공되고, 악곡의 연주와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모든 절차가 마감되면, 전체 참석자가 배위로 이동하여 네 번 절한 이후, 공식적으로 주5이 선언된다. 국왕이 퇴장하고, 신분별로 퇴장하면서 회례가 종료된다.

의의 및 평가

회례는 잔치에 절제를 담고자 한 의도를 반영한 의례였다. 국왕과 관원이 기쁨을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유교적 가치를 잔치에도 녹여내어, 음주와 가무로 인해 통치의 긴장이 해이해지는 것을 경계하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회례의 엄격한 규정과 운영은 위에서부터 절제하고 지나치지 않으려는 유교적 가치 체계가 작동되는 조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단행본

임영선, 『조선초기 신악창제와 회례 용악』(민속원, 2023)
강제훈, 『만남의 제도화, 조선시대 조정의례』(민속원, 2017)

논문

강제훈, 「조선 초기 정지회례(正至會禮) 의식의 정비와 운용」(『한국사학보』 34, 고려사학회, 2009)
주석
주1

한 해의 첫 달 가운데 첫날. 곧 정월 초하루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2

절을 하는 자리. 의식을 행할 때 정하여진 규례에 따라 정한다. 우리말샘

주3

잔에 술을 부어 돌림. 우리말샘

주4

마땅히 친하여야 할 사람과 친함. 우리말샘

주5

인사를 끝마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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