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연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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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수작 · 진연 · 진작 · 진찬 등의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
내용 요약

진연의궤는 조선 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이다. 수작·진연·진작·진찬 연회에 관련하여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총 16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719년의 기록인 『진연의궤』 1책이다. 이는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감을 경축, 진연을 베푼 6개월의 기록이다. 의궤는 내용 및 체재로 볼 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정조 이전, 순조 이후부터 1894년 갑오경장 전까지, 갑오경장 이후로 구분된다. 순조 이후 것은 도식이 상세하다. 한편 갑오경장 전후로는 의궤의 사용 용어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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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수작 · 진연 · 진작 · 진찬 등의 연회에 관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
서지적 사항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은 총 16종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719년(숙종 45) 4월부터 9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숙종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됨을 경축, 진연을 베푼 기록인 『진연의궤』 1책이 있다.

내용

진작에 관한 것으로는 1827년(순조 27) 왕세자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면서 부왕인 순조와 모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에게 주1를 올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회를 설행한 기록인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가 제일 처음 작성된 것이다.

이 가운데 「연설(筵說)」에 소개된 것에 따르면, 진연 또는 진찬의 연회는 그 이전에 자주 있었으며, 헌작례도 그때마다 행하여졌으나, 진작의 예는 이 때 처음으로 새로운 의식에 따라 거행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진작은 진연 또는 진찬의 일반적인 연회에서보다 헌작례에 중점을 두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또한, 진찬은 연회의 규모나 의식 · 절차 등으로 볼 때 진연보다 간소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작이라는 용어는 1765년(영조 41) 왕세손(뒤의 정조)의 간청으로 영조의 71회 생일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인 『수작의궤(受爵儀軌)』에서 사용되고 있을 뿐인데, 의식이나 절차에 있어 별다른 특징이 없으며, 다만 연회의 목적상 축하받는 당사자인 왕을 기준으로 하여 수작이라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수작 · 진연 · 진작 · 진찬 등 4종의 연회에 관한 의궤는 내용 및 체재면에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1828년에 만들어진 『진찬의궤』를 예로 들면, 권수에 총목이 있고 이어 택일 · 좌목(座目) · 도식(圖式), 권1에 예소(睿疏) · 영교(令敎) · 연설(筵說) · 악장 · 치사(致詞) · 전문(箋文) · 예제연구(睿製聯句) · 의주(儀註) · 절목 · 계사 · 달사(達辭) · 사목 · 이문(移文) · 내관(來關), 권2에 품목(稟目) · 감결(甘結) · 찬품 · 기용(器用) · 수리 · 배설 · 의장 · 의위(儀衛), 권3에 진작참연제신(進爵參宴諸臣) · 내외빈 · 공령(工伶) · 악기풍물 · 상전(賞典) · 재용 등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도식에는 명정전진찬반차도(明政殿進饌班次圖) · 회작반차도(會酌班次圖) · 야연반차도(夜讌班次圖) · 명정전도(明政殿圖) · 자경전도(慈慶殿圖) · 정재도(呈才圖) · 기용도 · 의장도 · 악기도 · 복식도 · 채화도(綵花圖) 등이 있어, 복식 · 기물 · 악기 · 무용 등 당시의 다양한 궁중의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택일에는 외진찬(外進饌) · 내진찬(內進饌) · 야진찬(夜進饌)의 일시 · 장소와 진찬습의일 등이 명시되어 있고, 좌목에는 진찬소 당상(堂上) · 낭청(郎廳) 등으로 차출된 사람의 직책 및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당상은 병조판서 등 7인, 낭청은 부사과(副司果) 등 6인으로 되어 있다.

권1의 예소 · 영교 · 연설은 진찬의 발의와 결정에 관한 내용이다. 악장 · 치사는 음률에 관계되는 악부 · 사령의 무가문(舞歌文), 전문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으로 임금에게 올리는 축하문, 예제연구는 왕제자가 제진하는 시문인데, 모두 의례의 거행을 찬미한 내용이다.

권2의 찬품에는 진찬 설행시의 각종 물목이 각 상(床)별로 세주(細註)와 함께 수록되고, 의위에는 각 처소와 유사의 명단이 첨부되어 있다. 권3의 진작참연제신에는 진작례에 참석한 사람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 의궤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궁중연회는 상당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거행되었다.

진연의 경우 참석인원 및 규모가 방대하였는데, 특히 1719년에 거행된 진연에는 종친 및 의빈 34인과 제신 이하 79인이 입참하였고 불승전자(不陞殿者)도 59인이 되었다.

1744년(영조 20) 대왕대비 인원왕후(仁元王后)를 위하여 진연을 거행할 때는 시 · 원임대신(時原任大臣)과 기로소의 제신, 정2품 이상의 실직에 있는 문신, 동반의 군직(軍職)이라도 70세 이상이면 모두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고, 서민으로 8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미육(米肉)을 하사하였다.

또한, 각 도에서 차출된 기생들의 이름과 나이까지 의궤에 수록되어 있다. 의궤의 내용 및 체재로 볼 때, 1기는 정조 이전, 2기는 순조 이후 1894년 갑오경장 전까지, 3기는 갑오경장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의 것에는 각종 도식이 없을 뿐더러 모든 업무를 각 방(房)에 분장시키고 있는 데 반하여, 2·3기에 만든 것은 각종 도식이 상세히 그려져 있고, 모든 의전에 관한 업무를 진연청 또는 진찬소 등에서 총괄하여 관장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갑오경장을 전후로 해서는 의궤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바뀌었음을 보게 된다. 모두 규장각에 있다.

주석
주1

남을 높여 부르는 칭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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