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5·10_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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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UN 韓國臨時委員團)
‘제2차 유엔(UN) 총회’(1947.11.14) 결정에 따라 5·10 총선거의 공정한 감시 및 관리를 위해 입국한 유엔 산하의 임시기구로서 영문 약칭은 UNTCOK(UN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구성된 헌정사상 최초의 의회이다. 제주도를 제외한 선거구에서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으며, 헌법제정 등 특수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기는 2년이었다. 이승만이 의장, 김동원과 신익희가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정부조직법·반민족행위처벌법·양곡매입법·국가보안법 등 20여 건의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다. 1949년 4월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인 국회의원 13명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체포한 ‘국회 프락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헌국회 (制憲國會)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구성된 헌정사상 최초의 의회이다. 제주도를 제외한 선거구에서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으며, 헌법제정 등 특수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기는 2년이었다. 이승만이 의장, 김동원과 신익희가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헌법을 제정하고 이승만을 대통령,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정부조직법·반민족행위처벌법·양곡매입법·국가보안법 등 20여 건의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다. 1949년 4월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인 국회의원 13명을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체포한 ‘국회 프락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남송전 중단은 1948년 5월 14일에 남북한의 전력 협상 실패와 남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해 실시한 5·10 총선거를 계기로 북한에서 전력 공급을 중단한 사건이다. 해방 직후 남한 전력 소비량의 60% 이상은 북한 송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남북한 전력 협상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1948년 5월 5·10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확실해지면서 체제 대립이 현실화되자 북한은 대남송전을 중단했던 것이다. 두 지역의 경제적 보완성이 높았던 관계로 남한은 이 조치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대남송전 중단 (對南送電 中斷)
대남송전 중단은 1948년 5월 14일에 남북한의 전력 협상 실패와 남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해 실시한 5·10 총선거를 계기로 북한에서 전력 공급을 중단한 사건이다. 해방 직후 남한 전력 소비량의 60% 이상은 북한 송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남북한 전력 협상은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1948년 5월 5·10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확실해지면서 체제 대립이 현실화되자 북한은 대남송전을 중단했던 것이다. 두 지역의 경제적 보완성이 높았던 관계로 남한은 이 조치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2·7사건은 1948년 2월 7일 단선단정을 반대하며 남조선로동당이 주도한 전국적인 파업·봉기 사건이다.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후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고 남북한 분단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남조선로동당이 주도하여 1948년 2월 7일부터 10일까지 단선단정에 반대하는 파업·봉기를 전국적으로 전개한 사건이다. 2·7파업, 2·7폭동 또는 2·7투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2·7사건 (二七事件)
2·7사건은 1948년 2월 7일 단선단정을 반대하며 남조선로동당이 주도한 전국적인 파업·봉기 사건이다.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후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고 남북한 분단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남조선로동당이 주도하여 1948년 2월 7일부터 10일까지 단선단정에 반대하는 파업·봉기를 전국적으로 전개한 사건이다. 2·7파업, 2·7폭동 또는 2·7투쟁으로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