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호(趙秉鎬)
1882년 도승지·이조참판에 올라 임오군란 당시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 일행을 장악원으로 피신시켜 보호조처하였다. 민비의 국상 발표에 반대하였고, 청군(淸軍) 입성시에는 우창칭[吳長慶]의 영접관(迎接官)이 되어 안내하였다. 1883년 안동부사가 되어 동래민란과 성주민란의 안핵사(按覈使)를 겸임, 민란을 진압, 처리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후 사대당(事大黨) 중심의 정부조직 때에는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에 특별 발탁되어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金玉均)·박영효(朴泳孝) 등의 소환을 일본정부에 요구하는 등 사대당 정책수행에 노력하였다. 그 뒤 강화부 유수를 거쳐 1885년 공조·예조의 판서, 한성부 판윤을 차례로 역임하고, 1886년 다시 예조 판서가 되었다. 1889년 의정부 우참찬·한성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