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곽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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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비는 872년 곡성 태안사에 경문왕의 명령으로 세워진 적인선사의 탑비이다. 최하가 글을 짓고, 요극일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적인선사의 생애와 가계, 선사상과 동리산문의 형성을 담아 놓았다. 마지막 부분은 선사의 업적을 요약한 송으로 결론을 지었다. 부록으로 대안사의 복전 등 경제 사항을 수록했다. 기존 탑비는 파괴되었으나 구례 화엄사에 보관된 필사본을 바탕으로 곡성 태안사에서 근래에 복원하였다. 탑비는 나말여초에 크게 번성한 동리산문의 초기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및 신라 말 사찰의 경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비 (大安寺 寂忍禪師 照輪淸淨塔碑)
대안사 적인선사 조륜청정탑비는 872년 곡성 태안사에 경문왕의 명령으로 세워진 적인선사의 탑비이다. 최하가 글을 짓고, 요극일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는 적인선사의 생애와 가계, 선사상과 동리산문의 형성을 담아 놓았다. 마지막 부분은 선사의 업적을 요약한 송으로 결론을 지었다. 부록으로 대안사의 복전 등 경제 사항을 수록했다. 기존 탑비는 파괴되었으나 구례 화엄사에 보관된 필사본을 바탕으로 곡성 태안사에서 근래에 복원하였다. 탑비는 나말여초에 크게 번성한 동리산문의 초기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및 신라 말 사찰의 경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창림사 무구정광 탑원기」는 855년 경주 창림사에서 문성왕이 석탑의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긴 사리함 기록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내용에 따라 무구정탑을 만들며 발원한 내용과 참여자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국왕이 발원하는 이 불사 활동에는 왕족 여러 명이 주요 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발원문은 김립지가 왕명을 받아 지었으며, 글씨는 왕희지체를 집자한 것으로, 글자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쌍구법으로 새겨 놓았다. 내용은 국왕의 선행을 통한 인과를 강조하고 있다. 문성왕이 왕위쟁탈전의 두려움을 신앙을 통해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창림사 무구정광탑원기 (昌林寺 無垢淨塔願記)
「창림사 무구정광 탑원기」는 855년 경주 창림사에서 문성왕이 석탑의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긴 사리함 기록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내용에 따라 무구정탑을 만들며 발원한 내용과 참여자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국왕이 발원하는 이 불사 활동에는 왕족 여러 명이 주요 책임자로 참여하였다. 발원문은 김립지가 왕명을 받아 지었으며, 글씨는 왕희지체를 집자한 것으로, 글자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쌍구법으로 새겨 놓았다. 내용은 국왕의 선행을 통한 인과를 강조하고 있다. 문성왕이 왕위쟁탈전의 두려움을 신앙을 통해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말 경주 단석산 신선사에 마애불군상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긴 기록.
단석산 신선사 조상명기 (斷石山 神仙寺 造像銘記)
삼국시대 말 경주 단석산 신선사에 마애불군상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긴 기록.
민애왕 석탑 사리합기는 863년 동화사 비로암에 경문왕이 죽은 민애왕의 추복을 위해 3층석탑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적은 사리합 기록이다.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흑칠한 납석제의 원형 항아리의 외면에 가는 선으로 7자 38행의 공간을 만들고, 발원문을 해서로 음각하였다. 이 사리합기는 『무구정경』 내용 외에도, 『법화경』에서도 그 뜻을 취하여 신라 불교의 또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민애왕 석탑 사리합기는 경문왕대에 범원성왕가가 용서와 화해를 통한 은원을 풀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애왕 석탑 사리합기 (閔哀王 石塔 舍利盒記)
민애왕 석탑 사리합기는 863년 동화사 비로암에 경문왕이 죽은 민애왕의 추복을 위해 3층석탑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적은 사리합 기록이다. 198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흑칠한 납석제의 원형 항아리의 외면에 가는 선으로 7자 38행의 공간을 만들고, 발원문을 해서로 음각하였다. 이 사리합기는 『무구정경』 내용 외에도, 『법화경』에서도 그 뜻을 취하여 신라 불교의 또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민애왕 석탑 사리합기는 경문왕대에 범원성왕가가 용서와 화해를 통한 은원을 풀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백률사 석당기는 818년(헌덕왕 10)에 신라불교의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석당의 기록이다. 이차돈순교비, 이차돈공양비라고도 부른다. 높이 104㎝이고, 너비는 29㎝로 6면 석당에 이차돈의 순교 장면으로 시작하여 흥법을 위해 법흥왕과 이차돈의 모의, 이차돈의 순교와 신이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마멸이 심하여 읽기 어렵지만, 『삼국유사』를 참고하여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신라하대의 정치변동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분열을 귀족들의 합심으로 극복하고 중고신라시대의 정신으로 복귀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백률사 석당기 (栢栗寺 石幢記)
백률사 석당기는 818년(헌덕왕 10)에 신라불교의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여 세운 석당의 기록이다. 이차돈순교비, 이차돈공양비라고도 부른다. 높이 104㎝이고, 너비는 29㎝로 6면 석당에 이차돈의 순교 장면으로 시작하여 흥법을 위해 법흥왕과 이차돈의 모의, 이차돈의 순교와 신이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마멸이 심하여 읽기 어렵지만, 『삼국유사』를 참고하여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신라하대의 정치변동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분열을 귀족들의 합심으로 극복하고 중고신라시대의 정신으로 복귀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신라 하대에 포항 법광사에서 비구 향조(香照)의 시주로 석탑을 건립하고 또 수리한 사실과 조선시대에 2회에 걸쳐 수리한 사실을 적은 탑지.
법광사 석탑지 (法光寺 石塔誌)
신라 하대에 포항 법광사에서 비구 향조(香照)의 시주로 석탑을 건립하고 또 수리한 사실과 조선시대에 2회에 걸쳐 수리한 사실을 적은 탑지.
신라 하대에 장흥 보림사에서 석탑을 건립하고 중수한 사실과 조선시대 2회에 걸쳐 수리한 사실을 적은 탑지.
보림사 석탑지 (寶林寺 石塔誌)
신라 하대에 장흥 보림사에서 석탑을 건립하고 중수한 사실과 조선시대 2회에 걸쳐 수리한 사실을 적은 탑지.
804년 선림원에서 신광부인의 시주로 종을 만들고 사실을 새겨 놓은 글.
선림원 종명 (禪林院 鍾銘)
804년 선림원에서 신광부인의 시주로 종을 만들고 사실을 새겨 놓은 글.
879년에 경주 남산의 선방사에서 탑을 조성하고 사리를 봉안한 사실을 적은 탑지.
선방사 탑지 (禪房寺 塔誌)
879년에 경주 남산의 선방사에서 탑을 조성하고 사리를 봉안한 사실을 적은 탑지.
검푸른 빛을 띠는 청석(점판암)으로 조성한 고려시대 석탑.
청석탑 (靑石塔)
검푸른 빛을 띠는 청석(점판암)으로 조성한 고려시대 석탑.
801년 함안 지역의 미도(弥刀)가 방어산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겨 놓은 기록.
방어산 마애삼존명 (防禦山 磨崖三尊銘)
801년 함안 지역의 미도(弥刀)가 방어산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발원 내용을 새겨 놓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