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구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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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압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이다. 관압사는 세종 대 이래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고, 1531년(중종 26) 정조사가 동지사(冬至使)로 대체되면서, 동지사와 함께 파견되었다.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되었고, 당상관인 역관(譯官) 중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되었으며,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고,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파견되지 않았다.
관압사 (管押使)
관압사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4년에 1번씩 말을 조공할 때 파견되던 사행(使行)이다. 관압사는 세종 대 이래 정조사(正朝使)와 동행하였고, 1531년(중종 26) 정조사가 동지사(冬至使)로 대체되면서, 동지사와 함께 파견되었다. 관압사는 정3품 당상(堂上) 문무 관료 중에서 선정되었고, 당상관인 역관(譯官) 중에서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압사는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 형성되었으며, 명 시기에만 존속하였고, 청나라와 관계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파견되지 않았다.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북평관 (北平館)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서장관(書狀官)은 조선시대에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 ‘삼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관직이다. 왕복 약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각종 외교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監察)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로 사헌부의 4품에서 6품 관원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일본 통신사도 비슷한 체제로 운영되었다.
서장관 (書狀官)
서장관(書狀官)은 조선시대에 중국으로 가는 외교사절단의 지휘부 ‘삼사신(三使臣)’ 가운데 한 관직이다. 왕복 약 5개월 동안의 사행 기간 동안 보고 들은 각종 외교 정보를 기록하여 국왕에게 보고하고, 사행단의 비리나 부정을 감찰(監察)하는 임무를 맡았다. 주로 사헌부의 4품에서 6품 관원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일본 통신사도 비슷한 체제로 운영되었다.
조공이란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주변국이 중국에게, 또는 주변국들 간에 외교를 위해 사행을 파견하며 예물을 바친 행위이다. 외형적으로 군신(君臣) 관계라고 하는 상하 관계를 가진 예법 질서였지만, 당사자 양자의 이익을 고려한, 합목적적인 외교적 정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조공 (朝貢)
조공이란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주변국이 중국에게, 또는 주변국들 간에 외교를 위해 사행을 파견하며 예물을 바친 행위이다. 외형적으로 군신(君臣) 관계라고 하는 상하 관계를 가진 예법 질서였지만, 당사자 양자의 이익을 고려한, 합목적적인 외교적 정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