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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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민공동회는 1898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독립협회가 서울 종로에서 대소관민을 모아 국정 개혁안을 결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개최한 집회이다. 독립협회는 가두집회를 거부하고 독립관에서 개최하자는 개혁파 관료들을 설득하여 종로에서 각종 사회단체와 일반 시민·학생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으로 「헌의육조」라는 개혁 강령을 채택하였다. 핵심 내용은 근대적 입헌정치의 실현이었다. 초기에 부정적이던 고종도 이 강령을 재가하고 국정개혁안을 담은 ‘조칙오조’를 내렸다. 하지만 수구 세력의 방해공작으로 입헌정치는 끝내 좌절되었다.
관민공동회 (官民共同會)
관민공동회는 1898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독립협회가 서울 종로에서 대소관민을 모아 국정 개혁안을 결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개최한 집회이다. 독립협회는 가두집회를 거부하고 독립관에서 개최하자는 개혁파 관료들을 설득하여 종로에서 각종 사회단체와 일반 시민·학생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 합동으로 「헌의육조」라는 개혁 강령을 채택하였다. 핵심 내용은 근대적 입헌정치의 실현이었다. 초기에 부정적이던 고종도 이 강령을 재가하고 국정개혁안을 담은 ‘조칙오조’를 내렸다. 하지만 수구 세력의 방해공작으로 입헌정치는 끝내 좌절되었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윤치호 일기 (尹致昊 日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신·정치인 윤치호가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 년간에 걸쳐 작성한 일기.
의회설립운동은 1898년 독립협회가 민중과 제휴하여 추진한 의회설립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서재필·윤치호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독립협회 토론회에서 의회의 필요성을 공식 거론함으로써 표면화되었다. 독립협회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참정권을 주어 전제군주정체를 입헌대의정체로 개편하고자 하였다. 정부에서는 중추원을 의회 형식으로 개편하고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회원을 중추원 의관에 임명하는 편법으로 의회설립운동을 저지하였다. 중추원개편안에 대한 논란 속에서 고종이 독립협회를 혁파시키면서 군주의 통치를 형식화하는 의회제적 군주제로 전환되지 못하였다.
의회설립운동 (議會設立運動)
의회설립운동은 1898년 독립협회가 민중과 제휴하여 추진한 의회설립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이다. 서재필·윤치호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독립협회 토론회에서 의회의 필요성을 공식 거론함으로써 표면화되었다. 독립협회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참정권을 주어 전제군주정체를 입헌대의정체로 개편하고자 하였다. 정부에서는 중추원을 의회 형식으로 개편하고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회원을 중추원 의관에 임명하는 편법으로 의회설립운동을 저지하였다. 중추원개편안에 대한 논란 속에서 고종이 독립협회를 혁파시키면서 군주의 통치를 형식화하는 의회제적 군주제로 전환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