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송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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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傳)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은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대가야의 황금 금관 및 부속 금제품이다. 197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금관은 대륜을 비교적 넓은 폭으로 제작한 후 그 위에 4개의 초화문을 세운 형식이고 입식의 꼭대기는 보주형으로 마감하였다. 대륜과 입식에는 작은 원형의 보요 장식이 매달려 장식을 더하였다. 금관과 함께 수습된 부속 금구는 귀걸이, 반지 등 금관에 부속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가야의 세력자였던 고령 지역 최고 수장층의 금관으로 보이며 가야의 금공 기술의 발전도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傳 高靈 金冠 및 裝身具 一括)
전(傳)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은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대가야의 황금 금관 및 부속 금제품이다. 197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금관은 대륜을 비교적 넓은 폭으로 제작한 후 그 위에 4개의 초화문을 세운 형식이고 입식의 꼭대기는 보주형으로 마감하였다. 대륜과 입식에는 작은 원형의 보요 장식이 매달려 장식을 더하였다. 금관과 함께 수습된 부속 금구는 귀걸이, 반지 등 금관에 부속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가야의 세력자였던 고령 지역 최고 수장층의 금관으로 보이며 가야의 금공 기술의 발전도를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제 허리띠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실 최고위층에서 사용한 것으로, 다른 금동이나 은제 허리띠에 비해 장식성이 돋보인다. 요패, 금판 띠꾸미개 40매, 17개의 허리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패에는 17줄이 달려있는데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중 가장 많다. 허리 장식 중 가장 긴 것은 54.5㎝로, 3개의 금구슬이 장식되어 있다. 이 허리띠는 화려한 장식이 발전한 신라 고유의 문화를 대표한다. 또한 고구려·백제와의 대외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금관총 금제 허리띠 (金冠塚 金製 허리띠)
금관총 금제 허리띠는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발견된 금제 허리띠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실 최고위층에서 사용한 것으로, 다른 금동이나 은제 허리띠에 비해 장식성이 돋보인다. 요패, 금판 띠꾸미개 40매, 17개의 허리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패에는 17줄이 달려있는데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중 가장 많다. 허리 장식 중 가장 긴 것은 54.5㎝로, 3개의 금구슬이 장식되어 있다. 이 허리띠는 화려한 장식이 발전한 신라 고유의 문화를 대표한다. 또한 고구려·백제와의 대외관계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한 쌍의 촛대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접시를 굵은 기둥에 연결했다. 큰 접시 아래에는 6개의 다리가 있고 그 밑에 여섯 꽃잎 모양의 받침대를 다시 부착하였다. 촛농을 바치는 두 점의 접시도 중앙에 꽃잎과 함께 수정을 감입해 장식하였다. 작은 접시 위에는 이층으로 표현된 연꽃 받침이 놓여 있는데, 주변을 각 잎마다 12개의 수정이 감입된 연꽃잎으로 둘렀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세련된 조형감을 엿볼 수 있어 8세기 중반 이후 금속공예 상황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가치가 크다.
금동 수정 장식 촛대 (金銅 水晶 裝飾 촛臺)
금동 수정 장식 촛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한 쌍의 촛대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크고 작은 두 개의 접시를 굵은 기둥에 연결했다. 큰 접시 아래에는 6개의 다리가 있고 그 밑에 여섯 꽃잎 모양의 받침대를 다시 부착하였다. 촛농을 바치는 두 점의 접시도 중앙에 꽃잎과 함께 수정을 감입해 장식하였다. 작은 접시 위에는 이층으로 표현된 연꽃 받침이 놓여 있는데, 주변을 각 잎마다 12개의 수정이 감입된 연꽃잎으로 둘렀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세련된 조형감을 엿볼 수 있어 8세기 중반 이후 금속공예 상황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가치가 크다.
천마총 관모는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 금제 관모이다. 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다양한 무늬를 새긴 여러 개의 금판을 앞뒤로 이어 붙여 제작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문양과 함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정을 두드려 작은 점들이 찍혀 있다. 이는 마치 작은 금알갱이를 붙인 듯한 화려함을 더해준다. 관모 형태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모두가 쓰는 삼국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천마총 관모는 신라 관모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6세기 전반경으로 편년되어 있어 신라 관모의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천마총 관모 (天馬塚 冠帽)
천마총 관모는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 금제 관모이다. 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다양한 무늬를 새긴 여러 개의 금판을 앞뒤로 이어 붙여 제작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다채로운 문양과 함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정을 두드려 작은 점들이 찍혀 있다. 이는 마치 작은 금알갱이를 붙인 듯한 화려함을 더해준다. 관모 형태는 고구려와 백제, 신라 모두가 쓰는 삼국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천마총 관모는 신라 관모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6세기 전반경으로 편년되어 있어 신라 관모의 발전 과정을 보여 준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목걸이.
무령왕비 금목걸이 (武寧▽王妃 金목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목걸이.
천마총 금제 허리띠는 신라 천마총의 피장자 허리 부근에서 수습된 금제 허리띠이다. 전형적인 신라의 허리띠로, 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얇은 금판으로 만든 띠꾸미개 44매, 13줄의 금제, 2줄의 금동제 허리 장식이 있다. 허리띠에는 작은 칼·끌·향낭 같은 실용 기물이나 물고기 등의 상징물을 매달아 늘어뜨렸다. 이렇게 허리띠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것을 수하식이라고 한다. 천마총 금제 허리띠는 고구려와 중국 진대 조형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변용을 가해 수하식의 장식을 화려하게 첨가해 신라 고유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천마총 금제 허리띠 (天馬塚 金製 허리띠)
천마총 금제 허리띠는 신라 천마총의 피장자 허리 부근에서 수습된 금제 허리띠이다. 전형적인 신라의 허리띠로, 1978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얇은 금판으로 만든 띠꾸미개 44매, 13줄의 금제, 2줄의 금동제 허리 장식이 있다. 허리띠에는 작은 칼·끌·향낭 같은 실용 기물이나 물고기 등의 상징물을 매달아 늘어뜨렸다. 이렇게 허리띠에 매달아 늘어뜨리는 것을 수하식이라고 한다. 천마총 금제 허리띠는 고구려와 중국 진대 조형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변용을 가해 수하식의 장식을 화려하게 첨가해 신라 고유의 특징을 나타낸 것이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관식은 왕의 나무널 내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2매가 발견되었다. 금을 두드려 2㎜의 순금판을 만들고 문양의 나머지 부분을 오리는 투각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불꽃 형상을 만들고 날개 장식을 달았다. 관식의 윗부분에는 만개한 측면의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지금까지 백제 왕의 관식으로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왕은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쓴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 (武寧▽王 金製 冠飾)
무령왕 금제 관식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관식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관식은 왕의 나무널 내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2매가 발견되었다. 금을 두드려 2㎜의 순금판을 만들고 문양의 나머지 부분을 오리는 투각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으로 불꽃 형상을 만들고 날개 장식을 달았다. 관식의 윗부분에는 만개한 측면의 연꽃이 장식되어 있다. 무령왕 금제 관식은 지금까지 백제 왕의 관식으로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왕은 금꽃으로 장식한 오라관을 쓴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무령왕비 금제 관식 (武寧▽王妃 金製 冠飾)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금제 관식.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시대의 금제 띠고리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틀 위에 금판을 놓고 두드려서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표현하였다. 그다음 금실과 크고 작은 금알갱이, 비취옥 등으로 장식하여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말발굽 모양으로,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직각으로 각이 진 형태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장식 기법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또 누금세공의 수법이 매우 뛰어나며 용 7마리의 배치가 율동감이 있다. 이 띠고리는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금제 공예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平壤 石巖里 金製 띠고리)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시대의 금제 띠고리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틀 위에 금판을 놓고 두드려서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표현하였다. 그다음 금실과 크고 작은 금알갱이, 비취옥 등으로 장식하여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말발굽 모양으로,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직각으로 각이 진 형태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장식 기법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또 누금세공의 수법이 매우 뛰어나며 용 7마리의 배치가 율동감이 있다. 이 띠고리는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금제 공예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뒤꽂이.
무령왕 금제 뒤꽂이 (武寧▽王 金製 뒤꽂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제 뒤꽂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귀걸이 (武寧▽王妃 金귀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금귀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무령왕 금귀걸이 (武寧▽王 金귀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금귀걸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은팔찌.
무령왕비 은팔찌 (武寧王妃 銀팔찌)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비의 은팔찌.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2장의 장니 천마도.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신라 천마총에서 출토된 2장의 장니 천마도.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세 점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의 머리 부분에서 의자손수대경이, 왕의 다리 왼쪽 부근에서 방격규구신수경이 출토되었다. 또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수대경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의자손수대경이 가장 크며 그다음으로 수대경, 방격규구신수경 순이다. 이들은 모두 동물무늬와 손잡이가 있다. 특히 방격규구신수문경에는 신선사상이 담긴 명문이 있다. 이 세 점의 청동거울은 지배층의 상징물이다. 제작 연대가 528년으로 확실하여 백제 청동거울의 제작 양상을 살필 수 있다.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武寧王陵 靑銅거울 一括)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세 점이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왕의 머리 부분에서 의자손수대경이, 왕의 다리 왼쪽 부근에서 방격규구신수경이 출토되었다. 또 왕비의 머리 부분에서 수대경이 출토되었다. 크기는 의자손수대경이 가장 크며 그다음으로 수대경, 방격규구신수경 순이다. 이들은 모두 동물무늬와 손잡이가 있다. 특히 방격규구신수문경에는 신선사상이 담긴 명문이 있다. 이 세 점의 청동거울은 지배층의 상징물이다. 제작 연대가 528년으로 확실하여 백제 청동거울의 제작 양상을 살필 수 있다.
입사기법은 동·철 등의 금속에 선이나 홈을 파서 그 홈에 금·은·동·주석 등의 다른 금속을 채워 넣는 장식 기법이다. 상감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하여 명문이나 문양을 새겼다. 삼국시대에는 용문·봉황문·연판문 등을, 고려 시대에는 여의두문·범자·인동당초문 등을 새겼다. 조선 시대에는 십장생, 수·복 등 장수를 빌거나 길상을 뜻하는 문양들이 주를 이룬다. 현재 통도사 향완·포류수금문정병 등 다수의 국보들이 남아 있다. 입사기술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입사장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입사기법 (入絲技法)
입사기법은 동·철 등의 금속에 선이나 홈을 파서 그 홈에 금·은·동·주석 등의 다른 금속을 채워 넣는 장식 기법이다. 상감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하여 명문이나 문양을 새겼다. 삼국시대에는 용문·봉황문·연판문 등을, 고려 시대에는 여의두문·범자·인동당초문 등을 새겼다. 조선 시대에는 십장생, 수·복 등 장수를 빌거나 길상을 뜻하는 문양들이 주를 이룬다. 현재 통도사 향완·포류수금문정병 등 다수의 국보들이 남아 있다. 입사기술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입사장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