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기법은 동·철 등의 금속에 선이나 홈을 파서 그 홈에 금·은·동·주석 등의 다른 금속을 채워 넣는 장식 기법이다. 상감 기법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기법이다. 이 기법을 통하여 명문이나 문양을 새겼다. 삼국시대에는 용문·봉황문·연판문 등을, 고려 시대에는 여의두문·범자·인동당초문 등을 새겼다. 조선 시대에는 십장생, 수·복 등 장수를 빌거나 길상을 뜻하는 문양들이 주를 이룬다. 현재 통도사 향완·포류수금문정병 등 다수의 국보들이 남아 있다. 입사기술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입사장에 의해 맥이 이어지고 있다.
금속 표면에 선이나 면으로 음각을 하고 그 선이나 면에 다른 금속을 넣고 정으로 두드려, 색채 대비로 문양을 표현하는 입사기법은 기원전 3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하였으나, 근동에서는 사산조이란 왕조 이후인 이슬람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동, 금, 은을 넣은 입사공예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청동기에 많이 나타난다. 중국에서 금착(金錯) 또는 착금(錯金)이라고 불리웠던 이 기법은 청동기 주조 시 미리 홈을 파서 금사를 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선으로 입사기법이 이루어지다가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얇은 판이 입사 재료로 사용된다. 현재 일본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서 소장한 칠지도가 백제 근초고왕 24년 즉 369년에 제작된 것으로, 입사기법을 볼 수 있는 가장 이른 예이다. 삼국시대에는 환두대도 등의 무구를 비롯하여 행엽 등의 마구에 주로 사용되었고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향완, 정병 등의 불교 관계 유물에 많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정을 이용하여 사방으로 촘촘하게 쪼아 미세한 홈을 만들고, 그 안에 금은을 자유자재로 넣는 입사기법이 성행하여 다양한 문양이 장식되었다. 이 시기는 향완 등의 불교 관계 유물뿐 아니라 화로, 촛대, 담배함 등 일상 유물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