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황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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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보는 1915년, 감리교, 장로교 교파 연합신문으로 창간된 한글 주간 신문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일제가 한국인에게는 신문 발행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크램(W. G. Cram)의 명의로 『기독신보』를 창간하였고, 한국인도 주필, 편집 위원 등의 이름으로 경영 및 제작에 참여하였다. 7명의 선교사 사장을 거친 후 1933년 6월 28일 최초의 한국인 사장으로 전필순 목사가 선임되었으나, 이후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1937년 8월 휴간 후 1938년 1월 폐간되었다.
기독신보 (긔독신보 THE CHRISTIAN MESSENGER 基督申報)
기독신보는 1915년, 감리교, 장로교 교파 연합신문으로 창간된 한글 주간 신문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일제가 한국인에게는 신문 발행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 크램(W. G. Cram)의 명의로 『기독신보』를 창간하였고, 한국인도 주필, 편집 위원 등의 이름으로 경영 및 제작에 참여하였다. 7명의 선교사 사장을 거친 후 1933년 6월 28일 최초의 한국인 사장으로 전필순 목사가 선임되었으나, 이후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 끝에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한 채 1937년 8월 휴간 후 1938년 1월 폐간되었다.
『신앙생활』은 1932년 1월 김인서(金麟瑞)가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교회일치를 추구하고자 복음신앙·영화운동·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발행한 기독교 잡지이다. 1932년 1월 평양에서 창간하여 1941년 5월에 정간되었고, 1951년 부산에서 속간, 발행하다가 1956년에 폐간되었다. 국판 34면 내외의 월간으로 2개월 합병호의 경우가 많았으며, 전부 합쳐 129호까지 발행되었다.
신앙생활 (信仰生活)
『신앙생활』은 1932년 1월 김인서(金麟瑞)가 한국교회의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고 기독교 복음으로 교회일치를 추구하고자 복음신앙·영화운동·인화주의의 3대 강령을 문서로 전하기 위하여 발행한 기독교 잡지이다. 1932년 1월 평양에서 창간하여 1941년 5월에 정간되었고, 1951년 부산에서 속간, 발행하다가 1956년에 폐간되었다. 국판 34면 내외의 월간으로 2개월 합병호의 경우가 많았으며, 전부 합쳐 129호까지 발행되었다.
『신학지남』은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가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창간한 신학 연구지이다. 영문명은 Presbyterian Theological Quarterly이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에 평양신학교가 폐쇄되자 1940년에 함께 폐간되었다.
신학지남 (神學指南)
『신학지남』은 1918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가 장로교회의 신학 이해와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창간한 신학 연구지이다. 영문명은 Presbyterian Theological Quarterly이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1938년에 평양신학교가 폐쇄되자 1940년에 함께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