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덕군 ()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양덕 부분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양덕 부분
인문지리
지명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함경남도 영흥군과 고원군, 서쪽은 성천군, 남쪽은 황해도 곡산군, 북쪽은 맹산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6°24′∼127°04′, 북위 39°02′∼39°33′에 위치하며, 면적 1,345.6㎢, 인구 4만 7650명(1945년 현재)이다. 1개 읍 6개 면 69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양덕읍 용계리이다.

자연환경

높은 산과 험한 고개가 중첩되는 산악지대이다.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는 동쪽에는 낭림산맥(狼林山脈)의 남단부에 해당해 백산(白山, 1,452m)·북대봉(北大峰, 1,327m)·거차령(巨次嶺, 557m)·소북대봉(小北大峰, 1,274m) 등이 솟아 있고, 성천·곡산과 경계를 이루는 남쪽에는 언진산맥(彦眞山脈)이 뻗어내려 자하산(紫霞山, 1,216m)·하람산(霞嵐山, 1,486m)·박죽산(朴竹山, 949m) 등이 솟아 있다.

이 두 산맥과는 별도로 북쪽에는 고성산(姑城山, 1,017m)이 있고, 영봉(靈峰, 1,135m)에서 서남쪽으로 뻗는 구릉지대가 전개된다. 따라서 이 군은 동·남·북의 세 방면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고원상(高原狀)을 이룬다.

북대봉의 산줄기는 대동강의 상류인 비류강(沸流江)과 그 지류인 남강(南江)의 분수령이 된다. 이 두 강은 깊은 계곡을 곡류하며 각처에 기암과 절벽의 승지를 이루어 놓았다. 또한 곳에 따라 작은 평지나 선상지·분지를 형성하는데 그 중에서도 양덕 분지가 가장 넓다.

이 곳은 내륙 지방이고 고원지대라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7.6℃, 1월평균기온 -11.3℃, 8월평균기온 23.4℃, 연강수량 1,014㎜이다. 얼음은 대개 10월 17일경부터 얼기 시작해 다음 해 4월 10일경에 녹는다.

역사

[고대]

이 곳은 지금의 함흥·원산 등이 중심이었던 동예(東濊)와 이웃한 심산 유곡 지대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으나 고인돌이 발견되어 신석기시대에 이미 우리 조상들의 일부가 거주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 당시의 상황은 알 수 없으나 한나라의 낙랑군이 서북에 설치되었을 때 이 군 일대는 누방현(鏤方縣)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군현의 세력을 몰아내고 각지에 우리 부족 국가가 생겨났을 때 지금의 성천지방을 중심으로 한 비류국(沸流國)에 속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세워지면서 서기 전 40년대에 고구려에 통합되었고, 위치상 북방의 말갈족과 북상해 오는 신라 세력에 대한 군사 요지로 중시되었다.

6세기 중엽 이후 진흥왕대에 신라의 적극적인 북진정책으로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당시 북쪽 국경이 대동강과 원산을 잇게 되자, 그 북쪽에 놓여져 신라의 국력이 미치지 않게 되면서 차차 황폐해졌다.

[고려]

고려 초 이래로 북진정책이 적극 추진되면서 다시 역사상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황폐해졌던 이 군은 938년(태조 21) 지금의 동양면에 1,000여 명의 군사가 포진할 수 있는 양암성(陽巖城)을 축성함으로써 여진족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 거점을 마련하였다.

그 뒤 983년(성종 2)에 다시 지금의 양덕읍에 수덕성(樹德城)을 쌓아 남침해 오는 거란족에 대비하였다. 서쪽으로 지금의 맹산 철옹성(鐵瓮城), 박천 박릉진(博陵鎭), 숙천 통덕성(通德城)과, 동쪽으로는 영흥 지방의 각 성과 연결되는 양암성과 수덕성은 고려의 여진·거란의 침략에 대한 국방상의 요지였다.

성종 때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면서 이 군은 패서도(浿西道)의 일부로 편속되었다. 현종 때 거듭된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뒤 천리장성을 건설하게 되자 수덕성이 다시 수축되고, 또 북계관성(北界關城)이 새로 축성되었다.

그 뒤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별무반(別武班)이 편성되어 전국에 배치되면서 숙종 때 이 군에도 둔(屯)이 설치되고 토성진(兎城鎭 : 지금의 오강)에 별장(別將)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거유(車踰 : 지금의 쌍룡면)에 소모별장(召募別將)이 주둔하게 되었다. 뒤에 토성진은 첨사(僉使)가 주류하도록 승격되었다.

[조선]

1393년(태조 2) 각 도에 계수관(界首官)을 두고 8도제를 실시함에 따라 1396년양암진과 수덕진이 합쳐져 양덕현(陽德縣)이 되고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 행정을 장악하기 위해 현감이 파견되었다.

당시 양덕현의 읍기(邑基)는 지금의 동양면으로 1635년(인조 13)에 일시 파읍(破邑)되어 지금의 양덕읍으로 옮겨졌다가 3년 후 다시 동양면으로 옮겨졌다.

임진왜란으로 전쟁의 여파가 관북·관서에까지 미치자, 한때 양암성에 명나라의 장군 풍중영(馮仲纓)이 주둔해 함경도에 침략한 왜군과 대진하였다.

태종 때 이 곳을 방문한 조계생(趙啓生)의 시에, “현감이 할 일이 별로 없어 한낮에 사슴을 벗삼고, 산간이라 쌀날이 옥같이 귀하다.”고 하였다.

[근대]

1895년 갑오경장으로 지방 행정구역이 조정될 때 평양부 양덕군으로 승격되었으며 군수가 부임하였다. 1896년 4등군으로서 평안남도 양덕군이 되었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위태로울 때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궐기했는데, 이 곳에서도 김치복(金致福)·나찬준(羅贊俊)·장정원(張正元)·이영규(李永圭)·오기형(吳基亨)·고서금(高瑞金)·김찬문(金贊文)·김영도(金永道)·장응철(張應喆)·안준택(安俊澤)·오기언(吳基彦)·안인택(安仁澤)·김노수(金魯洙)·최병석(崔炳錫)·신응두(申應斗) 등의 의병이 동양면·양덕면의 부근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제천 의병장 유인석(柳麟錫) 부대나 관동 의병장 민용호(閔龍鎬) 부대가 만주로 투쟁 무대를 옮길 때 이 곳을 통과했는데, 이 때 많은 양덕 청년들이 독립 투쟁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1921년 동양면에 있던 군청이 지금의 양덕읍으로 옮겨졌으며, 1941년양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양덕읍 태평리의 남방식 고인돌을 비롯해 화촌면 평곡리·문흥리 등지에도 고인돌과 선돌이 발견되었다. 동양면은 구읍기(舊邑基)로 조선시대에 현감이 있던 곳으로서 당시의 공관이었던 양암관(陽巖館)·아사(衙舍)·좌치헌(佐治軒) 등의 유적지가 있다.

양암성은 938년(태조 21)에 양암진을 설치해 석축으로 성곽을 쌓은 것인데, 둘레 약 1,500m, 높이 3m이다. 성내에는 우물이 있어 삼면을 감싸 흐르고, 1,000여 명의 군사를 수용할 수 있으며 군량 창고가 있었던 유적이 있다. 현재 이 자리에 문묘가 있다.

수덕성은 983년(성종 2)에 지금의 양덕읍 수덕리에 쌓은 토성으로, 둘레 약 600m, 높이 3m였으나 흙으로 쌓았기 때문에 지금은 성지를 알아볼 수 없다.

오강면 창리에 있는 오강토성(吳江土城)은 고려시대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을 옷자락에 담아 날라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쌍룡면 정옥리에 있는 회암산성(檜巖山城)은 축조 연대와 성주는 미상이나, 규모가 장방형이며 성 내부 면적은 약 5,000평인데 계단식 출입구가 하나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여러 장수들이 은거하면서 무술을 수련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 밖에 유교 문화재로는 동양면 상석리에 문묘와 사직단(社稷壇)·성황사지(城隍祠址)가 있고, 동양면에 방화정이 있다.

교육·문화

교육은 향교와 각 마을에 있던 서당에서 주로 한학만 가르쳐 오다가, 1910년 박후권(朴厚權)이 동양면에 양춘학교(陽春學校)를 설립해 신교육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동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14년 김응상(金應祥)과 이한영(李翰永)이 양덕읍 인평리에 세창학교(世昌學校)를 설립한 것이 지금의 용계초등학교이다. 또한 1924년 이응호(李膺鎬)가 쌍룡면 용전리에 옥룡의숙(玉龍義塾)을 설립했는데, 1931년 평창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오강면에는 1927년 창(倉)이 있던 자리에 학교가 설립되었으나, 지형이 좋지 않다 해서 뒤에 봉암리로 이전되었다. 1935년 대륜면에 대륜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군내 1면 1교제가 실시되었다.

일제강점기 말엽에는 양덕읍에 인평·봉계 간이 학교가 있었다. 온천면 일양리에 1903년 김석두(金錫斗)가 창명학교(彰明學校)를 세워 한학·수학·도덕 등을 가르쳤으나 폐교되었다.

1920년 4년제 온천초등학교가 개교했는데, 일제강점기 말엽에 6년제 6학급으로 확충되었다. 화촌면 장성리에 1916년 박달모(朴達模)가 화명학교(化明學校)를 세웠으나 1918년 백석리에 화촌초등학교가 설립되어 흡수되었다.

종교 상황은 천도교 신자가 많아 3·1운동 때 크게 활약했으며, 양덕읍에 규모가 큰 종리원과 각 면에 포교소가 있고, 불교 사찰 6개, 개신교 교회 5개가 있다. 문화 행사로는 양덕읍 대탕지(大湯池)에서 해마다 대탕지 탕굿이 행해진다. 〈朴淵斗〉

이 고장의 설화로는 〈두류산 전설〉·〈기린산 치마대〉·〈바른톱이길 전설〉 등이 전한다. 이 중 〈두류산 전설〉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산에서 용마를 타고 갖가지 무술을 연마하고 있던 이성계는 자기 말이 얼마나 빠른지를 알아보기 위해 화살을 쏘았다.

그런 뒤 말을 달려 이 산에 도착했지만 화살이 보이지 않아 화살이 이미 지나간 것으로 생각해 말의 목을 쳤는데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그 뒤 이 산을 두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린산 치마대〉 역시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산에는 이성계가 용마를 타고 무술을 연마하던 형적으로 쇠로 만든 말구유와 말을 매던 기둥이 있다. 특히 이 산 중턱에 있는 흰색의 돌석 윗부분이 검어지면 비가 내린다는 속신이 있다.

〈바른톱이길 전설〉은 대륜면 괘송리에서 동양구읍으로 통하는 산길에 있는 지름길에 얽힌 유래담이다. 김장사가 만취되어 여주고개에서 쉬던 중 잠이 들었다가 축축해서 깨어 보니 호랑이가 술을 깨게 한 뒤 잡아먹으려고 자기 얼굴에 물을 뿌리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고 밤새 끌어당기자 호랑이는 끝내 죽었는데, 죽기 전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던 호랑이가 발톱으로 할퀴어서 생기게 된 자취가 바른톱이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약수에 얽힌 이야기로는 와룡산의 오래 묵은 뱀 세 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한 자리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면 물이 말라버린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병 장수한다는 〈화암약수 전설〉, 부정한 사람이 약수에 접근하면 많은 벌레들이 들끓는다는 〈고성산약수 전설〉 등이 전한다.

산업·교통

경작지의 대부분이 밭이며, 주요 농산물은 조를 비롯해 잎담배·옥수수·콩·밀·수수·대마·메밀 등이다. 그 중에서도 잎담배의 산출량은 평안남도에서 2위를 차지한다. 잎담배는 양덕초(陽德草)라고 불리는데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 일대에 널리 알려져 무역품이 되었으며, 옛날 중국에 가는 사신들의 선물로도 유명하였다.

대마로 짠 양덕포는 섬유질이 강하고 바탕이 고르며 광택이 나는 등 질이 좋기로 이름나 평양·원산 등지로 많이 반출된다. 성수기에는 각처의 상인들이 이를 사기 위해 모여든다. 부업으로는 축우가 행해지는데 양덕우(陽德牛) 역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군의 총면적의 80% 이상이 우수한 임야 지대로, 수종은 주로 적송(赤松)·낙엽송·참나무 등이다. 이러한 임산 자원에 힘입어 양덕읍에는 많은 제재소가 건립되어 용재(用材)를 생산해 평양·원산 등지로 대량 반출한다.

각종 광산은 북대봉을 기점으로 서쪽으로 뻗은 유전령(楡田嶺)과 세령(細嶺)을 연결하는 산맥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금·은광으로는 소림(小林)·세동(細洞)·먹골광산이 있어 한때 채굴이 활발했으나 지금은 부진하다. 중석광(重石鑛)으로 쌍룡광산이 있으나 시대에 따라 채굴하는 양이 크게 다르다.

시장으로는 1·6일에 동양면의 구읍장, 2·7일에 양덕면의 신읍장, 화촌면의 백석장, 3·8일에 오강면의 운창장, 5·10일에 온천면의 석탕장 등이 열린다. 이 곳에서는 농산물의 거래가 활발하며 직물과 축산물도 거래된다. 특히 우량소의 거래가 활발해 다른 지방에서 소상인들이 많이 모인다.

교통은 양덕읍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1등도로는 양덕∼평양간, 양덕∼원산간, 2등도로는 양덕∼곡산간, 3등도로는 양덕∼맹산간, 양덕∼성천간에 각각 연결된다.

철도는 평원선이 1941년에 개통되었는데, 양덕읍은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해 관서·관북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가 된다.

이 지방에는 동양팔경 중의 하나인 덕만대(德滿臺)가 있고, 화천면 용흥리의 기암 절벽에서 떨어지는 용천폭포가 있다. 양덕읍에는 대탕지온천·소탕지온천, 온천면 온정리는는 돌탕지온천, 평암리에는 벌탕지온천·지탕지온천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동양팔경은 동양면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빼어난 여덟 군데의 경치를 일컫는데, 동양면은 조선시대 현감이 있었던 곳이라 정자도 있고 경승지도 많다.

팔경은 제1경이 양암성(陽巖城), 제2경이 덕만대, 제3경이 유선대(遊仙臺), 제4경이 비류대(飛流臺), 제5경이 벽하루(碧霞樓), 제6경이 아사뒹이[衙舍後山], 제7경이 방화정(訪花亭), 제8경이 비득바위의 어화[鳩巖漁火] 놀이이다.

유선대와 비류대는 재령 산중에 있는 절경으로, 5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 벽하루는 현감의 놀이터였으며 1880년 이완용의 아우인 이윤용(李允用)이 현감으로 부임해 건립하였다.

아사뒹이는 조선시대 관아와 객사가 있던 뒷산을 미화한 것인데 주위에는 노송이 둘러싸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비득바위의 어화놀이는 밤에 수암리의 비득바위 아래 있는 깊은 못에서 횃불을 잡고 배를 타고서 고기 잡는 낭만적인 광경을 가리킨다.

그 중 덕만대는 동양면 수암리에 있는 절벽의 경승지로, 절벽 아래로 흐르는 맑은 강물을 끼고 우뚝 솟은 경치는 해금강을 방불케 한다. 맞은편 강기슭에는 광활한 잔디밭이 전개되어 봄철이면 여러 가지 색의 꽃이 만발해 황홀경을 이루는데 일명 ‘수촌벌’이라고도 한다.

수촌벌에 사는 비둘기떼가 덕만대의 비득바위[鳩巖]위에서 원을 그리며 오락가락 날아다니는 정경은 아름다우며 낭만적인 풍치를 자아낸다.

더구나 절벽 밑 강물에는 쏘가리·누치·모래무지 등의 여러 가지 물고기가 있어서 천렵을 하기에 좋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며, 고기를 잡아 어죽(魚粥)을 쑤어 먹기도 한다. 이 곳은 각급 학교 학생들의 소풍지로도 이용된다.

용천폭포는 높이 60m로 폭포 부근은 칼로 깎은 듯한 기암 괴석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고, 주위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폭포 입구는 머루와 다래덩굴로 덮여 있어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이며, 무더운 여름에도 폭포 주변은 냉기가 감돈다.

높은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맑은 폭포수는 마치 흰 명주를 펼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폭포 밑에는 검푸르고 깊은 못이 있는데, 예로부터 무서운 괴물이 산다고 전해지고 있다. 봄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비가 난무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온 산을 붉게 물들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소탕지온천은 양덕읍 용계리 노루메기[獐項洞]에 있는 작은 규모의 온천으로 성분은 유황이 섞인 알칼리성으로, 온도는 44℃이며 하루의 용출량은 556㎘이다. 거리가 대탕지온천보다 가까워 어린이와 노인들이 많이 이용한다. 온천이 발견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어느 겨울날 한 장님이 눈이 많이 쌓인 길을 걷다가 그만 물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기어 나오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추운 겨울인데 춥기는커녕 바지 속으로 스며드는 물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흙과 눈이 묻은 얼굴을 씻으려고 그 물로 세수를 하고 나니 갑자기 눈이 떠져서 밝은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 때부터 인근 주민들이 욕실을 만들고 ‘쇠경(장님)탕지’라고도 불렀다. 그 뒤 양덕읍사무소에서 관리하면서 욕실을 개축하였다.

읍·면

[양덕읍陽德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322.2㎢, 인구 1만 1160명(194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용계리이다. 본래 구룡면(九龍面)으로 7개 이를 관할하다가 1929년 면 폐합에 따라 낙천면(洛川面)의 5개 이를 병합해 군청 소재지가 되면서 양덕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1년 읍으로 승격되어 일명 신읍(新邑)이라고도 한다.

양덕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양암진(陽巖鎭)과 수덕진(樹德鎭)이 설치되었던 데서 연유한다. 읍내에는 소북대봉·백산·남대봉(南大峰, 960m)·유파령(柳把嶺, 852m)이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서부에는 언진산맥이 뻗어 박죽산·자하산 등으로 잇대어 황해도 곡산군 및 성천군과의 경계를 이룬다. 또한 옥계천(玉溪川)과 낙천이 합류해 비류강으로 유입되며, 하천 연변에는 분지가 형성되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농작물로는 양덕종(陽德種)으로 불리는 콩을 비롯해 조·팥·옥수수·메밀·감자 등 여러 가지 잡곡이 산출된다. 특히 메밀이 많이 생산되어 향토 음식으로 냉면을 많이 만들어 먹는다.

또한 토질이 잎담배 재배에 적합하기 때문에 서초(西草)라고도 불리는 양덕초가 생산되며, 다른 지방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다. 대마 재배가 활기를 띠어 이 곳에서 생산되는 삼베는 양덕포라고 하여 유명하며, 집집마다 가내 직조가 활발하다.

면적의 80%가 임야이며 물 좋고 옥초가 풍부해 축우 사육의 최적지로 우량우가 생산되며, 목재의 산출도 많아 평양·남포 방면으로 반출된다. 약초와 산채가 많이 자라며, 특히 송이버섯은 천하일미로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외국으로도 많은 양이 수출된다.

한편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평원선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를 이루며, 평양∼원산간 1등도로, 양덕∼곡산간 2등도로, 양덕∼맹산간 3등도로가 나 있다. 경승지로는 용계리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온천인 대탕지온천과 소탕지온천이 있다.

태평리 동평마을에는 밀양박씨, 당내마을에는 밀양손씨, 봉계리 시내마을에는 청해이씨, 수덕리 성저마을에는 덕산이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용계(龍溪)·봉계(鳳溪)·용흥(龍興)·태평(太平)·수덕(樹德)·지수(智水)·인평(仁平)·청송(淸松)·세동(細洞)·풍전(豐田)·운니(雲泥)·창(倉) 등 12개 이가 있다.

[대륜면大倫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89.3㎢, 인구 5,040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기리이다. 면내에는 두류산(頭流山, 1,324m)·아호비령(阿虎飛嶺) 등 태산준령으로 함경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는 무직산(霧織山, 1,206m)이 황해도와 경계를 이룬다. 덕곡산(德谷山, 1,207m)에서 발원하는 물이 무직산에서 발원한 물과 합류해 대동강 지류인 남강을 이룬다.

공진리와 괘송리 일대는 분지를 이루어서 쌀이 생산되며, 그 밖에 조·콩·옥수수·팥·보리·메밀 등 잡곡과 잎담배·대마 등의 특용 작물이 생산된다. 축우와 양잠 농가가 많아 집집마다 농우를 2, 3두씩 사육한다.

또한 뽕나무밭이 많아 누에고치를 이용해 명주를 생산하고, 대마 재배 농가가 많아 삼베를 짜서 농가 수입을 올린다. 제조업으로는 주물 공장이 있어 재래식 솥과 농기구를 생산해 군내 각 면에 공급한다.

교통은 평양∼원산간 1등도로가 면의 중심부를 지나 마식령을 넘어 원산으로 통한다. 사기리에는 전주최씨, 공진리에는 밀양박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사기(士基)·수주(水注)·구룡(九龍)·통동(通洞)·인흥(仁興)·공진(孔眞)·괘송(卦松) 등 7개 이가 있다.

[동양면東陽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4.4㎢, 인구 4,280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석리이다. 현감이 설치되었던 고장이며, 그 뒤 군청 소재지로 군내면(郡內面)이라 했는데 현재의 양덕읍과는 네 번이나 군청 소재지가 서로 바뀌었다. 1921년 양덕읍이 군청 소재지로 정착되면서 이 곳은 동양면으로 개칭되었으며 일명 구읍(舊邑)이라고도 한다.

면내에는 함경남도 고원군과 경계를 이루는 재령산이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용연(龍淵)이 있다. 언진산맥의 태산이라고 하는 하람산이 황해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치마대(馳馬臺)라는 이성계의 무술 연마 도장이 있다.

온천면에서 흐르는 물과 대륜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수암리에서 합류해 곡산군을 거쳐 남강의 상류인 능성강(能成江)으로 들어가므로 수암리와 성북리에서는 평야가 전개되어 쌀이 생산된다.

그 밖에 조·콩·옥수수·팥·밀 등의 잡곡과 잎담배와 대마 등의 특용 작물이 생산된다. 특히 물이 좋아 동양양조장이 건설되어 품질이 우수한 순곡주로 만든 35°소주가 생산되는데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교통은 평양∼원산간 1등도로가 지나고, 곡산군 하도면으로 통하는 등외도로가 있다. 유적으로는 938년 축조한 양암성터가 있고, 경승지로는 동양팔경의 하나인 방화정(訪花亭)·유선대 등이 유명하다.

방화정은 사각형의 정자로 양암 성지의 일부이며 향교 앞에 위치해 있다. 1916년 당시 양덕 군수인 최응두(崔應斗)의 제창으로 이 고장 유림이 후원해 건립되었다. 이 곳에 오르면 동양면의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며, 이 고장의 명필인 박인준(朴仁俊)의 친필을 비롯해 시를 써놓은 많은 현판이 걸려 있다.

또한 맑은 강물이 정자 아래로 흐르고 있어 촌로들의 산책 장소의 하나로 이용되며 피서 장소나 야외 연회장으로도 많이 이용된다. 주위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잣나무들이 있는데 대성전에서 거행되는 석전제 때에는 이 열매를 따서 제수로 쓰기도 한다.

성북리에는 밀양손씨와 파평윤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하석(下石)·성북(城北)·상석(上石)·신흥(新興)·수암(水巖)·지경(地境)·용산(龍山)·흘평(屹坪) 등 8개 이가 있다.

[쌍룡면雙龍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2㎢, 인구 6,320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창리이다. 1929년 상룡면(上龍面)과 하룡면(下龍面)이 병합되어 쌍룡면이 되었다.

정옥리와 성천군과의 경계에 회암산(檜巖山, 799m)이 있고, 오강면·양덕읍·쌍룡면과의 삼각 경계선에는 소북대봉이 있다. 화촌면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소북대봉에서 발원한 물이 용봉리에서 합류해 성천의 비류강으로 흘러 들어가 대동강의 상류인 서강이 된다.

산간 지대라서 쌀의 생산량은 적고, 조·콩·팥·옥수수·감자·메밀 등 잡곡이 주로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생산된다. 특히 잎담배는 군내에서 가장 질이 좋고 많은 수량이 생산된다. 뽕나무와 초지가 많아 농가에서는 양잠과 축우 사육이 활발하다.

용반리와 평창리에는 금광·은광이 있고, 중리에는 중석광이 있다. 교통은 양덕읍∼맹산간 3등도로가 동부를 지나며, 이 도로가 다시 북창리에서 분기해 면의 중앙을 거쳐 성천군 대구면 별창리를 연결하는 산업도로가 된다.

유적으로는 회암산에 축조 연대를 알 수 없는 회암산성이 있는데, 성의 내부 면적은 약 5,000여 평 정도이며 계단식 출입구가 하나인 점이 특이하다.

정옥리·관봉리·용봉리에는 청해이씨, 반성리·화락리에는 밀양박씨, 용전리에는 고부이씨, 반성리에는 수안이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평창(平倉)·관봉(冠峰)·반성(盤城)·화락(化樂)·용반(龍盤)·용전(龍田)·정옥(丁玉)·용봉(龍峰)·북창(北倉)·중(仲) 등 10개 이가 있다.

[오강면吳江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6.8㎢, 인구 6,580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리이다. 면내에는 영봉(靈峰, 1,136m)·와룡산(臥龍山, 1,024m)·백산·백두산(白頭山, 1,370m) 등 태산준령이 병풍을 친 듯 자연 방벽을 이루고 있다. 영봉에서 발원하는 여러 샛강의 물이 합류해 성천군으로 들어가 비류강이 된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조·콩·팥·옥수수·감자·메밀 등 잡곡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메밀이 많이 생산되어 경조사 때는 냉면으로 손님을 대접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많이 재배되며, 대마로 짜는 삼베를 집집마다 활발히 직조한다. 산간에 초지가 풍성해 축우를 사육하는 농가가 많으며, 또 재래 뽕나무가 많아 양잠을 하여 생산된 누에고치로 농가의 소득을 올린다.

산림 자원이 풍부해 원목 생산이 활발하며, 송이버섯·약재·산채 등도 많이 채취된다. 산간벽지로 자동차가 통할 수 있는 도로는 없고 우마차가 통할 수 있는 길만 있어 교통은 불편하다.

기차편을 이용하려면 15㎞ 이상 고개를 넘어 함경남도 고원군 운곡면으로 가야 하고, 자동차편은 화촌면 백석리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봉암리에는 평산신씨, 월명리에는 담양전씨, 용담리에는 밀양박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유적으로는 창리에 고려 숙종 때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해 축초한 토성이 남아 있다. 이것은 토성진을 설치하고 별장을 두었다가 6년 뒤 첨사로 승격시켜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두었을 당시 만든 것으로, 이 곳을 토성이라고도 부른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창(倉)·월명(月明)·봉암(鳳巖)·신봉(新峰)·신흥(新興)·용담(龍潭)·등암(鄧巖)·연봉(蓮峰)·쌍룡(雙龍) 등 9개 이가 있다.

[온천면溫泉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3.5㎢, 인구 9,550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온정리이다. 여러 개의 온천이 있는 온천 지대라서 온천면으로 되었다.

은우리와 함경남도 고원군 산곡면과 운곡면의 삼각 경계선에 기린산(麒麟山, 872m)이 있는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산에서 무술을 연마했다는 석물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와 거차령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하청리에서 합류해 동양면과 황해도 곡산군을 관류하면서 대동강 상류인 남강을 이룬다. 이 강 주변에는 관개 사업이 잘 이루어져 쌀 생산이 가능하고, 기타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잡곡이 산출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재배되는데 잎담배를 수매할 때는 주위에 장이 선다. 재래 뽕나무가 많아 집집마다 양잠을 하여 생산된 누에고치를 팔아 농자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축우 사육이 활발해 군내에서 제일가는 우시장이 선다.

임산 자원이 풍부해 원목이 평양으로 반출되며, 울창한 숲속에서는 송이버섯·산채·한약재가 채취되어 평양으로 반출된다. 제조업으로는 뜨거운 온천물을 이용해 원산 등에서 들여온 해초를 제조, 과자의 원료인 한천(寒天)을 다량으로 생산한다.

관광지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돌탕지온천[石湯池溫泉]이 있는데 수온은 71℃이며, 모든 질병에 효능이 있어 온천욕을 하려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교통은 평원선이 면의 북부를 통과해 내동·석탕온천·거차 등의 세 역이 있고, 평양∼원산간 1등도로가 중앙부를 통과해 동양면과 연결되어 원산으로 통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온정(溫井)·일양(日陽)·창(倉)·진석(眞石)·거차(巨次)·상청(上淸)·하청(下淸)·은우(隱牛)·평암(平巖)·상국(上菊)·하국(下菊)·상신(上信) 등 12개 이가 있다.

[화촌면化村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3.94㎢, 인구 4,726명(194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백석리이다. 면내에는 고성산·사악산(四嶽山, 872m)·와룡산이 있다. 오강(吳江)과 맹산군에서 흐르는 물이 백석리에서 합류해 대동강의 지류인 비류강으로 유입된다.

산간지대라서 쌀 생산량이 적고, 조·팥·콩·옥수수·메밀·감자 등 잡곡이 주로 생산된다. 특용 작물로는 잎담배와 대마가 재배되며, 뽕나무밭이 여러 곳에 있어 양잠이 활발하다. 가내 공업으로 삼베와 명주를 생산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초지가 많아 농우 사육도 행해진다.

임산물로는 원목이 있는데, 이는 뗏목을 만들어 장마 뒤에 대동강을 이용해 평양으로 반출한다. 또한 울창한 산림이 많아 송이버섯·약초·산채 등을 채취해 농가의 수입을 올린다. 교통은 양덕읍∼맹산간의 3등도로가 면의 중심부를 지난다.

명승지로는 용흥리에 용천폭포가 있는데 높이 70여 m의 기암 괴석으로 절경을 이룬다. 여의리에는 예로부터 피난처로 유명한 무난동이 있는데, 여기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가 있고 주위의 경관이 절묘하며, 현감 김종겸(金鍾謙)이 쓴 유산비(遊山碑)가 있다.

장성리·쌍평리·평곡리·문암리에 밀양박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백석(白石)·문흥(文興)·평곡(平谷)·장성(長星)·화암(花巖)·풍계(楓溪)·문암(文巖)·용흥(龍興)·여의(如意)·쌍평(雙坪)·창개(昌介) 등 11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쌍룡면·화촌면·오강면이 분리되어 신양군이 신설되고, 나머지 양덕읍·온천면·동양면·대륜면은 면 행정단위가 폐지되고 이 단위로 분할·통폐합되어 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1954년 10월 용계1리와 용계2리의 일부가 양덕읍에, 용계2리의 일부는 상신리에 편입되었다. 1967년 10월 평원리와 송도리가 신양군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평안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강원도 천내군·법동군, 서쪽은 신양군, 남쪽은 황해북도 신평군, 북쪽은 함경남도 고원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6°33′∼127°05′, 북위 39°02′∼39°20′에 위치하며, 면적 870㎢, 인구 7만 2400여명(1995년 추정)이다.

현재의 행정구역은 양덕읍과 은하(隱下)·온정(溫井)·태흥(太興)·봉계(鳳溪)·운창(雲倉)·상신(上信)·삼계(三溪)·거상(巨上)·일암(一岩)·용평(龍坪)·용암(龍岩)·상성(上城)·동양(東陽)·추마(秋馬)·통동(通洞)·사기(士基)·구룡(九龍)·수덕(壽德) 등 18개 이로 되어 있다.

이 군은 평안남도의 동부 산간지대에 있어 깊은 골짜기가 많다. 북부에는 북대봉산맥이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고, 동부에는 아호비령산맥이 강원도와의 경계를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남부에는 강동산맥이 황해북도 신평군과의 경계를 따라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군 경계에는 재령산(1,217m)·두류산(1,329m)·천을봉(1,209m)·하람산(1,485m)·자하산(1,217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서부 지역에는 비류강의 지류인 평원천이, 동부에는 남강 지류인 약수천·송강천 등 대동강 계열 하천들이 흐르고 있다.

기반암은 중생대 화강암이 많고, 원생대 석회암이 깔려 있다. 토양은 주로 갈색산림토이며, 일부 고산 지대에는 산악표백화 갈색산림토가, 하천 주변에는 충적토가 퍼져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7.4℃, 1월평균기온 -10.4℃, 8월평균기온 23℃이며, 첫서리는 10월 5일경, 마지막 서리는 5월 5일경에 내린다. 연평균 강우량은 1,140㎜이다.

산림은 군 넓이의 85%로서, 식물상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이고, 참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사스래나무·자작나무·피나무·엄나무·가래나무 등 수백 종의 나무들이 분포되어 있다.

산에는 돌배·머루·다래·도토리 등 산과일과 산채·약초 자원이 많으며, 특히 송이버섯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이름나 있다. 군에는 거차회중석노두·노각나무군락 등 천연기념물이 있다.

농경지는 군 넓이의 8.5%이며, 그 중 밭은 83.7%, 논 5.8%, 과일밭 5%, 뽕밭이 5.5%를 차지한다. 곡물 생산에서도 옥수수가 87%, 쌀은 10%이며, 그 밖에 콩·감자가 생산된다. 공예 작물로는 담배·들깨·박하를 심으며, 특히 질 좋은 담배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야산과 산기슭에는 대단위 과수밭이 조성되어 배·복숭아·추리·양딸기 등이 재배되고 있으며, 넓은 방목지를 이용해 소·돼지·양·염소·토끼 등도 사육되고 있다. 뽕밭과 풍부한 밀원을 바탕으로 양잠과 양봉이 발전하였다.

양덕산림사업소 등의 임산 기지에서는 광산용 갱목과 제재용 원목을 생산하고 있다. 이 군은 목재 가공 공업이 발달해 송탄유를 비롯한 목재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목재 화학 공장과 목재 가구 공장이 있다. 지하 자원으로는 철·망간·중석·안티몬·연·갈철광 등이 있으며, 인평광산·양덕광산 등에서 채굴되고 있다.

그 밖에 식료품·직물·철제 일용품·초물·모피 가공품·악기·기념품 등을 생산하는 지방 공장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로 만든 축배잔과 양덕소주·포도술은 이 지방의 특산물로 알려져 있다.

교통망으로는 평라선(평양∼나진) 철도가 통과하고 있고 평양∼원산간, 양덕∼신평간의 도로와 신양군과 고원군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깊은 골짜기와 산이 많은 이 군에는 십이폭포·용소동폭포·비룡폭포·쌍룡폭포 등 이름난 폭포들이 있으며, 양덕읍에는 ‘대탕지’라고 부르는 양덕온천과 온정리의 석탑온천이 있다. →신양군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양덕군지』(양덕군민회, 1983)
『평안남도지』(평안남도지편찬위원회)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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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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