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탐욕하고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하였다고 하며, 고종 때에 선군별감(選軍別監)을 지내면서 뇌물을 많이 받아 은상서(銀尙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1252년(고종 39) 추밀원부사로서 몽고에 사행(使行)하였다가 이듬해 몽고로부터 금패(金牌)를 받고 5차 침략군과 함께 입국, 적의 앞잡이가 되었다.
그리하여 침략군 사령관인 예쿠[也古, 也窟]에게 고려측 사정을 자세히 알려주어 예쿠의 전략 수립을 도왔으며, 다른 한편으로 경유하는 고려의 제성(諸城)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이때 양근성(楊根城)과 천룡성(天龍城)의 두 성을 항복시키고 스스로 이 지역의 다루가치(達魯花赤)가 되어 항부민(降附民)을 거느리고 충주성의 공격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충주성 공격은 1253년 적장 예쿠의 지휘하에 부장 아무간(阿毋侃), 그리고 반역자 홍복원(洪福源)이 포함된 주력부대에 의하여 70일간이나 포위 공격을 전개하였으나 방호별감(防護別監) 김윤후(金允侯)가 지휘하는 충주민의 항전을 이겨내지는 못하였다.
몽고군이 철수하자 전쟁중에 노획한 부녀와 재화를 모두 자기소유로 삼았으나 반역적 행위로 말미암아 곧 가족과 함께 처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