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집(家州集)』은 이상질이 죽은 후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초고(草稿)를 아들 이훤(李藼)이 편집한 책이다. 이것을 1660년(현종 1) 이상질의 친구 정두경(鄭斗卿)이 다시 편집한 후 1668년(현종 9)경 5권 1책의 필사본으로 만들어 집안에 소장했다. 그 후 1718년(숙종 44) 이상질의 증손인 평안도관찰사 이조(李肇)가 집안에 전하던 초고를 저본으로 하여 목판으로 초간본(初刊本)을 간행하였다.
5권 1책의 목판본이다. 앞부분에 서종태(徐宗泰)가 지은 서문, 수록된 시문의 전체 목록, 이훤이 편집한 연보(年譜)가 차례대로 수록되었다. 끝부분에는 1718년(숙종 44) 이조가 지은 발문이 있고, 서종태가 선별한 이훤의 시와 글 30여 편을 수록한 『도촌유고(道村遺稿)』가 부록으로 실려있다.
이상질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문(子文), 호는 가주(家州)이다. 아버지는 이진(李瑱)이고, 어머니 함안이씨(咸安李氏)는 이성(李晟)의 딸이다. 권필(權韠)의 문인으로 1629년(인조 7)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사간원, 병조, 홍문관 등에서 관직을 역임했다. 1634년 인조가 생부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숭하는 것을 반대하다가 종성(鐘城)에 유배되었고, 이듬해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회양(淮陽)에서 죽었다.
총 5권 중에서 제1권부터 제4권까지는 시(詩)가 수록되었고, 제5권에는 산문이 수록되었다. 제1권에는 「신계동석(新溪洞石)」 등 오언절구 6수, 「향규원(香閨怨)」 등 칠언절구 28수가 실려 있는데, 「두백촌차빙군운(頭白村次聘君韻)」은 1618년(광해군 10)에 양양부사(襄陽府使)로 있던 장인 정엽(鄭曄)을 따라 금강산을 유람하며 지은 것이고, 「문태수연군루(聞太守宴郡樓)」와 「봉정흥해태수(奉呈興海太守)」는 1624년(인조 2) 외할머니와 이모부인 흥해군수(興海郡守) 홍보(洪靌)를 만나러 흥해에 갔을 때 지은 것이다.
제2권에는 「산사(山寺)」 등 오언율시 33수, 「봉별정부총환천조(奉別程副摠還天朝)」 등 오언배율 9수가 수록되었는데, 정두경·이안눌(李安訥)과 주고받은 시, 이정구(李廷龜)·구봉서(具鳳瑞)를 전송하며 지은 시, 김장생(金長生)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 등이 수록되었다. 제3권에는 「봉두정도(鳳頭亭圖)」·「봉정김장로범희차(奉呈金丈老范希次)」 등 칠언율시 27수가 수록되었는데, 남이공(南以恭)의 시에 차운하고, 나만갑(羅萬甲)을 전별하며, 정엽에게 보내는 시 등이 수록되었다.
제4권에는 「문유거마객행(門有車馬客行)」 등 오언고시 29수, 「백저가(白紵歌)」 등 칠언고시 11수가 수록되었다. 제5권에는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할 때 지은 「평치우송(平蚩尤頌)」 1편, 1618년 장인 정엽을 모시고 금강산을 유람할 때 지은 「배빙군장유서(陪聘君壯遊序)」의 서문 1편, 습재(習齋) 권벽(權擘)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 1편, 「제빙군수몽정선생문(祭聘君守夢鄭先生文)」 등 정엽과 서성(徐渻)을 추모한 제문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상질은 이안눌·김장생·이정구·정엽 등 당대의 대표적인 서인들과의 교분을 통해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던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권필의 문인이었던 저자는 정계는 물론 당시 문단에서도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했는데, 『가주집』은 그러한 이상질의 문학 세계와 사대부 사회에서 교유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