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집 ()

대곡집
대곡집
유교
문헌
조선 전기의 문인, 성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03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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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의 문인, 성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03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대곡집(大谷集)』은 1596년(선조 29) 성운의 문인이자 처조카인 김가기(金可幾)가 성운의 시들을 수집하여 간행을 기획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것을 김가기의 아들 김덕민(金德民)이 1603년(선조 36)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유근(柳根)의 도움을 받아 간행한 초간본이다.

서지적 사항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앞부분에 1603년 유근이 지은 서문이, 끝에는 1579년(선조 12) 6월 선조(宣祖)가 성운의 상중(喪中)에 내린 사제문(賜祭文)이 각각 수록되었다.

내용

성운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숙(健叔), 호는 대곡이다. 아버지는 성세준(成世俊)이고, 어머니 비안박씨(比安朴氏)는 박효원(朴孝元)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진사시에 합격했는데, 1545년(명종 즉위년) 작은 형 성우(成遇)가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자 속리산에서 은거했다. 이후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대부분 곧바로 사퇴하거나 출사하지 않았고, 서경덕(徐敬德)·조식(曺植)·이지함(李之菡) 등과 사귀며 학문에 전념했다.

상권(上卷)은 시, 중권(中卷)은 시와 잡저(雜著), 하권(下卷)은 묘갈명(墓碣銘)과 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는 「배이형휴우일인범주유둔덕탄승야내환(陪二兄携友一人泛舟遊屯德灘乘夜乃還)」 등 240여 수의 시가 작성 형식의 구분 없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충청도 보은의 속리산에서 은거할 때 지은 시들이다. 「대곡우음(大谷偶吟)」, 「촌거(村居)」, 「한거(閑居)」 등과 같이 은거하며 지내는 삶의 감흥을 노래한 시가 다수를 차지하는데, 「기건중(寄楗仲)」, 「정자경(呈子敬)」 등 친분이 깊었던 조식(曺植), 성제원(成悌元) 등과 주고받으며 지은 시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희암만사(希庵挽詞)」 등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만시(挽詩)도 수록되었다.

중권에는 조식과 교분이 있던 지리산 승려를 전송하며 지은 「송전상인(送田上人)」과 보은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성제원의 학문과 행실을 칭송하며 지은 「상읍재성동주(上邑宰成東洲)」의 오언(五言) 장편시 2수와 잡저가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는 「허부찬(虛父贊)」, 「대한부(大旱賦)」, 「사설(蛇說)」, 「답우(答友)」, 「취향기(醉鄕記)」, 「대인작(代人作)」 2편, 「청송선생유사(聽松先生遺事)」, 「사직상소(辭職上疏)」, 「사사속백서(謝賜粟帛書)」 등 10편이 수록되었다. 「허부찬」은 성운이 자호(自號)를 ‘허부(虛父)’라고 지은 내력을 기록했고, 「취향기」에서는 은거하는 자신의 뜻과 절개를 표방했으며, 「청송선생유사」에서는 성운의 종형인 성수침(成守琛)의 이력을 기록했다.

하권에는 김벽(金碧)의 아내에 대해 지은 「유씨묘갈(柳氏墓碣)」, 친구인 조식에 대해 지은 「남명선생묘갈(南溟先生墓碣)」, 김태암(金泰巖)에 대해 지은 「희암묘갈(希庵墓碣)」, 박훈(朴薰)에 대해 지은 「박승지묘갈(朴承旨墓碣)」의 비명(碣銘) 4편, 조식을 추모하며 지은 「제남명선생문(祭南溟先生文)」 등 제문 3편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성운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사화(士禍)에 직면하여 출사를 단념하고 은거하여 처사(處士)로서의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곡집』은 조선 중기 처사로서의 삶을 살았던 성운의 교유와 학문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대곡집(大谷集)』
「대곡 성운의 생애와 시 세계」(김성기, 『우암논총』2, 2009)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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