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명유(古今名喩)』 초간본은 1573년 전후한 시기에 명나라 선성(宣城)에 있는 경야당(耕野堂)의 정관루(靜觀樓)에서 편찬되었고, 그 간행 시기는 1577년으로 추정된다. 편찬자 오사기가 선현의 학술에 관한 『경유(警喩)』를 저술하다가 장서가 날로 증가하고 이를 통해 얻는 학문의 규모가 늘어나자 이를 확대하여 『고금명유』를 편집하게 되었다는 편찬 내력이 서문에 서술되어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판본은 2권 1책의 영본(零本)인 목활자본(古 170-O8g)과 2권 1책의 영본인 필사본(奎 12267), 그리고 5책의 목활자본(海士 한 26-v.1-5)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2권 4책본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12권 6책본이 수록되어 있고, 12권본의 마지막에 오사기에 대한 글인 「경야당기(耕野堂記)」가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2권본이 완질본(完帙本)으로 추정된다.
오사기는 명나라 학자로 완릉(宛陵)에 살았으며, 호는 문대(文臺), 자는 덕망(德望)이다. 1573년 오사기가 지은 「자서(自序)」와 1577년 채봉시(蔡逢時)가 지은 서문 「고금명유서(古今名喩序)」가 앞부분에 수록되어 있다. 고금의 명가들이 남긴 문헌 60여 종에서 명문을 선발하여 해당 항목에 적고 글의 끝 부분에 그 출전을 기록했다. 대부분 한 항목 당 한 가지 문헌에서 선정했지만 많은 경우에는 21종의 문헌에서 선별한 경우도 있다.
『양자(揚子)』‚ 『순자(荀子)』‚ 『소자(蘇子)』‚ 『제책(齊策)』‚ 『열자(列子)』‚ 『사기(史記)』‚ 『가어(家語)』‚ 『한비자(韓非子)』‚ 『국어(國語)』‚ 『한자(韓子)』 등 인용한 문헌의 이름을 기록했지만 방손지(方遜志)‚ 하경명(何景明)‚ 낙빈왕(駱賓王)‚ 사마광(司馬光)‚ 가의(賈誼)‚ 육선공(陸宣公) 등 저자의 이름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제1권에는 「중신기(重神器)」‚ 「정군심(正君心)」, 「임현재(任賢才)」 등 39개 항목‚ 제2권에는 「태사공골계열전(太史公滑稽列傳)」‚ 「추기이고금설위왕(鄒忌以鼓琴說威王)」, 「손숙오감간(孫叔敖敢諫)」 등 34개 항목, 제3권에는 「기미필저(幾微必著)」, 「노불가장(怒不可藏)」, 「능인(能忍)」 등 36개 항목, 제4권에는 「재상(宰相)」, 「대신(大臣)」, 「육관(六官)」 등 44개 항목, 제5권에는 「백린도설(百鱗圖說)」, 「설탄석(雪灘釋)」, 「작수설(酌水說)」 등 35개 항목, 제6권에는 「시불가실(時不可失)」, 「침중난진(沉重難進)」, 「불평지명(不平之鳴)」 등 46개 항목, 제7권에는 「육경제자(六經諸子)」, 「유서부독(有書不讀)」, 「보집유서(補緝遺書)」 등 35개 항목, 제8권에는 「도량탐독(稻粱酖毒)」, 「포의속식(布衣粟食)」, 「후적박발(厚積薄發)」 등 46개 항목, 제9권에는 「징호기(澄湖記)」, 「성택원기(聖澤源記)」, 「온재기략(韞齋記畧)」 등 30개 항목, 제10권에는 「진불용위(眞不容僞)」, 「유위이위(有爲而爲)」 등 38개 항목, 제11권에는 「인정필지(人情必至)」, 「승암망동(乘闇妄動)」 등 31개 항목, 제12권에는 「명와부(鳴蛙賦)」, 「추성부(秋聲賦)」 등 49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고금명유』는 조선에 유입된 이후 조선의 판본으로 개간되어 간행될 정도로 조선의 문인들에게 널리 읽혔으며 특히 초학자들을 중심으로 수신과 학문의 기본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후세에 감계가 될 만한 각종 명문들을 다양한 원전에서 각각의 주제별로 선별하여 수록했기 때문에 심신 수양 및 문장 학습의 좋은 지침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