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집(鳳棲集)』은 유신환의 사후 제자 윤병익(尹秉益)이 스승의 글을 수집하고, 서응순(徐應淳)이 교정하는 등 편찬을 준비했지만 완성하지 못하였다가 1913년 문인 김윤식(金允植)이 주도하여 간행한 초간본이다.
8권 4책의 석인본(石印本)이다. 앞부분에 김학진(金鶴鎭)이 지은 서문과 전체의 총목차가 수록되었고, 각 권마다 권목차가 수록되었다. 끝부분에 수록된 발문은 1909년 김윤식이 지었고, 마지막에 정오표(正誤表)가 수록되었다.
유신환의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경형(景衡), 호는 봉서이다. 아버지는 유성주(兪星柱)이고, 어머니 전주유씨(全州柳氏)는 유덕보(柳德普)의 딸이다. 유신환은 오희상(吳熙常)의 계보를 잇는 성리학자로서 역사와 율력(律曆), 산수(算數) 등에도 정통했다. 파주 봉서산(鳳棲山) 아래 살았기 때문에 봉서선생(鳳棲先生)으로도 불렸다. 제자인 윤병정(尹秉鼎), 서응순, 윤치조(尹致祖), 김윤식 등은 대부분 노론 가문의 후손들로 온건개화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다.
제1권부터 제2권까지는 1830년(순조 30) 스승 오희상에게 보낸 「상오선생(上吳先生)」 등 편지 55편이 수록되었다. 오희상을 비롯하여 홍석주(洪奭周), 김매순(金邁淳), 홍직필(洪直弼), 이시민(李時敏), 조병덕(趙秉悳), 심규택(沈奎澤), 김낙현(金洛鉉), 서응순 등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경전에 대한 질문을 비롯하여 제반 사항이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제3권에는 사행하는 홍석주를 전송하며 지은 「송연천홍공여연서(送淵泉洪公如燕序)」 등 서문 12편, 「유장씨원기(遊蔣氏園記)」 등 기문 5편, 송시열의 『안항첩(顔巷帖)』에 대한 「발우암선생안항첩(跋尤庵先生顔巷帖)」 등 발문 2편, 선산(善山) 사람인 김학원(金鶴遠)의 시권(詩卷)에 대한 「제김생학원시권(題金生鶴遠詩卷)」 등 제발 7편, 「염씨족보인(廉氏族譜引)」 1편, 김상현(金尙鉉)이 소장하고 있던 고검(古劍)에 대한 「김위사가장고일명(金渭師家藏古釰銘)」 등 명(銘) 7편, 「경재잠난(敬齋箴亂)」의 잠(箴) 1편이 수록되었다.
제4권에는 오희상의 죽음을 애도한 「제노주오선생문(祭老洲吳先生文)」 등 제문 5편, 김긍연(金肯淵)의 죽음을 애도한 「김사긍애사(金士肯哀辭)」 등 애사 2편, 「대학도설(大學圖說)」 등 잡저 9편이 수록되었다. 제5권부터 6권까지는 잡저로 구성되어 있다. 제5권에는 「시무편(時務篇)」 등 8편이 수록되었는데, 「시무편」에서 당시의 가장 큰 폐단을 군정(軍丁)을 징발하는 것과 서얼(庶孼)을 금고(禁錮)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포(戶布) 대신 토지의 수량에 따라 내는 결포(結布)를 시행해야 하며 서얼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서얼선거법(庶孼選擧法)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제6권에는 훈민정음을 음성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삼십육성역(三十六聲譯)」, 독서하는 과정에서 발췌한 사서삼경 및 한유(韓愈)·이이(李珥) 등의 글에 자신의 감상을 덧붙여 기술한 「독서기(讀書記)」 등 22편이 수록되었다. 제7권에는 6권에서 이어진 「독서기」와 큰형 유무환(兪茂煥)에 대한 「백씨진사공묘지(伯氏進士公墓誌)」 등 묘지 11편, 윤경여(尹慶畬)에 대한 「상시헌윤선생묘갈(象時軒尹先生墓碣)」 등 묘갈 2편이 수록되었다. 제8권에는 유격(柳格)에 대한 「병조정랑유공행장(兵曹正郞柳公行狀)」 등 행장 3편, 부친 유성주의 연보에 대한 「선고복원재연보후기(先考復元齋年譜後記)」 등 기문 2편 등이 수록되었다.
유신환은 19세기 조선의 사상계에서 유행하던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혁신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조선 성리학의 가치를 재평가 한 대표적 인물이다. 『봉서집』은 그러한 저자의 학문을 보여주는 시문집으로 19세기 사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