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여선생박의 ()

유교
문헌
송나라 학자 여조겸이 『춘추좌전』에 수록된 사건에 관하여 논평한 유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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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송나라 학자 여조겸이 『춘추좌전』에 수록된 사건에 관하여 논평한 유학서.
편찬/발간 경위

여조겸이 지은 「동래선생자서(東萊先生自序)」에 의하면, 편찬 시기는 여조겸이 모친의 상중(喪中)에 있던 1168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을해자본(乙亥字本)은 1511년에 간행된 것이고, 무신자본(戊申字本)은 현종(顯宗) 연간에 간행된 것이다. 다른 기관에 소장된 목판본들은 대체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후반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사항

완질본(完帙本)은 25권으로 구성되었다. 8권본과 4권본의 판본은 내용을 요약한 간략본이다. 완질본은 168편으로, 간략본은 86편으로 각각 구성되었다. 권수제(卷首題)는 ‘동래여선생좌씨박의(東萊呂先生左氏博議)’이고, 판심제(版心題)는 ‘동래박의(東萊博議)’이다.

내용

여조겸은 남송 무주(婺州) 금화(金華) 출신으로, 자는 백공(伯恭), 호는 동래(東萊)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출생하여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왕응진(汪應辰) 등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주희(朱熹), 장식(張栻) 등과 교유했다. 1163년 진사에 급제한 후 다시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합격했다. 주희와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조정하기 위해 아호(鵝湖)의 모임을 주재하기도 하는 등 남송의 가장 유력한 학자 중 한 명이다.

제1∼2권에는 정나라 무공(武公)의 큰아들 장공(莊公)과 둘째 아들 공숙단(共叔段)의 이야기를 다룬 「정장공공숙단(鄭莊公共叔段)」을 비롯하여 주(周)나라와 정(鄭)나라의 관계에서 있었던 선악의 일을 다룬 「주정교악(周鄭交惡)」, 송나라 목공(穆公)이 상공(殤公)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에 대한 「송목공입상공(宋穆公立殤公)」과 「용병(用兵)」 등 43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용병」에는 송나라 양공(襄公)이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흰머리가 난 늙은 적병은 공격하여 잡지 말도록 하였고, 또 상대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는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결국 초나라에게 패배하고 포로가 되었던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제3∼4권에는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신후(申侯)를 총애한 것에 대한 「초문왕총신후(楚文王寵申侯)」, 제(齊)나라 위공(威公)이 정(鄭)나라 태자의 화의 요청을 거절한 것에 대한 「제위공사정태자화(齊威公辭鄭太子華)」, 제나라 환공(桓公)이 주변국 제후들과 규구(葵丘)에서 모여 불효자를 처단하고 세자를 세우면 이후 바꾸지 않으며 첩을 아내로 삼지 않기로 하는 등 5가지 주제에 대해 논의한 것에 대한 「규구지회(葵丘之會)」, 사람을 써서 신에게 제사한 것에 대한 「용인사신(用人祀神)」, 송나라 사람들이 조나라를 포위한 것에 대한 「송인위조(宋人圍曹)」, 수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한 것에 대한 「수벌초(隨伐楚)」, 송나라 양공(襄公)이 정나라를 공격하니 초나라 사람들이 송나라를 공격하여 정나라를 구원하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한 「송공초인전어홍(宋公楚人戰於泓)」 등 43개 항목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동래여선생박의(東萊呂先生博議)』는 공자가 지은 노(魯)나라 역사서 『춘추(春秋)』에 대한 좌구명(左丘明)의 해석서인 『춘추좌전』에 수록된 사건에 대한 여조겸의 논평을 요약한 문헌이기 때문에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역사 공부의 중요한 근거 자료였다. 특히 완질본보다 간략본의 형태로 조선에서 널리 유행했던 이유는 『동래여선생박의』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초학자들의 필독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역주) 동래박의』(정태현·김병애 역, 전통문화연구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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