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높이 86cm. 199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옥련사는 덕남리 기룡마을 뒤 만덕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1951년 백련사의 소속이던 송광암 터에 초가집 두 칸을 지어 강진군 대구면에 있는 정수사(淨水寺)에서 목조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부터 법등을 밝히고 있는 최근의 사찰이다.
이 불상은 소형이지만 원래의 복장물이 1991년 5월에 확인되어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넓적한 사각형을 이루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머리 중간에 반월형의 중간 계주가 있고 정상에는 원통형의 정상 계주가 있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이며 두툼하고 의문(衣文 : 옷자락 무늬)은 간단한 편이다.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법의 자락은 팔꿈치까지만 내려오다 옆으로 흘러 반단(半袒)으로 처리하였다. 군의의 상단 옷주름은 좌우대칭형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장식하여 특이하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오른손으로 땅을 짚어 지신(地神)에게 부처가 마군(魔軍)을 물리쳤음을 증명하는 자세로서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하는 의미)을 결하고 있으며, 별조한 왼손의 손목 끝 부분에 ‘釋迦(석가)’라고 묵서하여 이 불상이 석가여래임을 표시하였다.
대좌는 최근에 다시 만들어 본래의 대좌형식은 알 수 없다. 불상의 하면은 목판으로 마무리하였으며 중앙에서 뒤쪽으로 가로 15cm, 세로 9cm 크기의 직사각형 복장 구멍을 뚫어 놓았다.
복장물은 발원문을 비롯해서 경전류와 후령통 등이었다. 발원문은 가로 75.8cm, 세로 77.7cm의 직사각형 한지에 행서로 묵서한 것으로서 몇 겹 접어 놓았다.
내용은 갑자년(1684년) 봄에 명언 스님이 나한전을 새로 짓고 난 후 법당에 아무런 존상도 없어서 복을 빌 곳도 없고 받을 곳도 없게 되자 영운 스님이 나서서 나한전에 모실 삼존불과 16나한 등 23구를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조성에 참여한 장인은 상공 색남 비구를 비롯해서 부공 도헌, 차공 행단, 모현, 범변, 웅원, 철옥, 도견, 문인 비구 등 모두 9인의 스님이었다. 노란 보자기 속에 있는 후령통(높이 8.6cm, 지름 2.4cm)은 청동으로 만들어졌으며 형식은 원통형이고 그 안에 천으로 만든 오보병이 나왔다.
이 불상은 조성 연대가 1684년으로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복장물이 원형대로 확인되어 17세기 불상을 연구하는데 하나의 기준 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