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400㎝, 귀부 높이 110㎝, 비신 높이 233㎝, 너비 118㎝, 두께 29㎝. 귀부(龜趺)·이수(螭首)·비신(碑身)을 모두 갖춘 완형으로 비명은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全羅道康津萬德山白蓮寺事蹟碑)’이다. 비문은 모두 19행으로 1행은 45자로 되었으며 행서체이고,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문관수찬 조종저(趙宗著)가 찬하였다. 이 비문과 만덕사지(萬德寺志)에 의하면 고려 한림학사 최자(崔滋)가 찬한 고려시대의 고비(古碑)가 있었으나 그 비신을 잃어, 이 사적비를 세울 때 그것의 귀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최자가 찬한 원래의 고비는 백련사 원묘국사(圓妙國師)의 비로 추정되며, 그 비명은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따라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있는 귀부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고려 전기 귀부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보다는 동세가 약하고 장식적인 모습을 보인다. 얼굴은 용두화(龍頭化)되었으며 입에는 여의주가 없고 목에는 5개의 줄이 가로로 음각되었다. 네 발의 발톱은 살짝 움켜쥐듯 모았으며 이중의 육각문 안에는 5엽의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비좌 주변에는 인동문(忍冬文)이 조각되어 있고, 비신의 양 측면에는 화려한 당초문이 있다. 이수는 사각형이며 두 마리의 용이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이 비는 ‘崇禎紀元戊辰後五十四年辛酉五月立(숭정기원무진후54년신유5월입)’이라 하여 1681년(숙종 7) 5월에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