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련사 사적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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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강진 백련사 사적비 정면
강진 백련사 사적비 정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에 있는 고려후기의 귀부를 재활용하여 조선후기에 건립된 사적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강진 백련사 사적비(康津 白蓮寺 事蹟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04년 01월 26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7 백련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에 있는 고려후기의 귀부를 재활용하여 조선후기에 건립된 사적비.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400㎝, 귀부 높이 110㎝, 비신 높이 233㎝, 너비 118㎝, 두께 29㎝. 귀부(龜趺)·이수(螭首)·비신(碑身)을 모두 갖춘 완형으로 비명은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全羅道康津萬德山白蓮寺事蹟碑)’이다. 비문은 모두 19행으로 1행은 45자로 되었으며 행서체이고,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홍문관수찬 조종저(趙宗著)가 찬하였다. 이 비문과 만덕사지(萬德寺志)에 의하면 고려 한림학사 최자(崔滋)가 찬한 고려시대의 고비(古碑)가 있었으나 그 비신을 잃어, 이 사적비를 세울 때 그것의 귀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최자가 찬한 원래의 고비는 백련사 원묘국사(圓妙國師)의 비로 추정되며, 그 비명은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따라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있는 귀부는 고려 후기의 것으로 고려 전기 귀부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모습보다는 동세가 약하고 장식적인 모습을 보인다. 얼굴은 용두화(龍頭化)되었으며 입에는 여의주가 없고 목에는 5개의 줄이 가로로 음각되었다. 네 발의 발톱은 살짝 움켜쥐듯 모았으며 이중의 육각문 안에는 5엽의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비좌 주변에는 인동문(忍冬文)이 조각되어 있고, 비신의 양 측면에는 화려한 당초문이 있다. 이수는 사각형이며 두 마리의 용이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이 비는 ‘崇禎紀元戊辰後五十四年辛酉五月立(숭정기원무진후54년신유5월입)’이라 하여 1681년(숙종 7) 5월에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 1992)
『전남의 사찰』Ⅰ(목포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 1989)
「백련사 사적비 귀부의 미술사적 의의」(주수완, 『강좌미술사』 48호, 한국미술사연구소, 2017)
「강진 백련사의 석조미술과 원묘국사의 부도와 탑비」(엄기표, 『호남문화연구』 제60집,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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