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바탕에 옅은 채색. 세로 96.7㎝, 가로 61.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다.
가로로 “화인(華人)의 검선도를 방(倣)해서 취설옹(醉雪翁)에게 바치다. 종강모루(鍾岡毛樓)에서 비오는 가운데 그리다(倣華人劒僊圖奉贈醉雪翁 鍾岡雨中作).”라는 관지(款識)가 기록되어 있다.
종강모루가 1754년(영조 30)에 축조된 점으로 보아 40대 후반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와 위로 곧게 뻗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정면을 향한 검선의 반신상이 묘사되어 있다.
검선은 당나라 신선으로 자가 동빈(洞賓)인 여암(呂巖)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동빈은 포주(浦州) 출신으로, 호가 순양자(純陽子)·회도인(回道人)이다. 여산(廬山)에서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 천둔검법(天遁劍法)을 얻었다고 한다.
64세 때에는 종리권(鐘離權)을 만나 황백지술(黃白之術)을 배워 신선이 되었다. 여동빈은 칼을 든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유로 검선을 여동빈으로 추정한 것이다.
소나무 가지 위의 덩굴은 고요하게 드리워져 여유로운데, 검선의 수염과 관모에만 바람이 불어 더욱 서늘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가늘면서도 꼿꼿한 필선으로 전체를 통일시키고 있는데, 날카로운 눈매와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섬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 차거운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
한편으로는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겁고 강한 양면성을 보인 작품이다. 이 그림은 격조높은 문인화풍으로 그린 도석인물화라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