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옅은 채색. 세로 30.6cm, 가로 20.6cm. 간송미술관 소장. 광배(光背)를 두른 관음보살은 바다 위에 떠서 화면은 왼쪽을 바라다보고 있다. 그 뒤에는 숨은 듯이 서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버드나무 가지를 꽂은 정병을 들고 있다.
수월관음도의 경우 대개 선재동자가 관음 앞에 엎드려 도를 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관음 뒤에 수줍은 듯이 숨어 얼굴을 내민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화면 오른쪽 위에는 행서로 ‘檀園(단원)’이란 관서(款署)를 쓰고 그 밑에 ‘士能(사능)’이란 주문방인(朱文方印)을 찍었다. 이 왼쪽에는 송월헌주인(松月軒主人) 임득명(林得明)이 제발(題跋)을 행서(行書)로 적어 놓았다. 화면 왼쪽 위에 다음과 같이 예서체(隷書體)로 적혀 있다.
“쓸쓸히 홀로 벗어나 매인 데 없으니, 구름 자취 학 모습 더욱 짝할 수 없네. 이미 삼천리 안에 앉지도 않았고, 또한 삼천리 밖에 서지도 않았으니, 이는 천리마가 봄바람 살랑이는 광야에 있는 것 같고, 신령스런 용이 밝은 달 비추는 창해에 있는 것 같다고 할 수 있다. 송월헌주인(簫然獨脫無拘繫 雲종鶴態逾難齊 豈不坐於三千里內 亦不立於三千里外 是可謂逸驥之於春風廣野 神龍之於明月滄海. 旣 松月軒主人).”
“남쪽 비니원(毘尼園) 가운데 연꽃 위에서 탄생하시고, 천하에 무위도(無爲道)를 행하시어 고해에 빠진 이들을 건져 내시며, 불난 집에서 불타는 이들을 구해 내시었으나, 초연히 창해만리 밖에 우뚝 홀로 서 계시니, 천상천하에 오직 내 홀로 존귀하다는 글 그대로이구나(南降毘尼園中蓮華上 行無爲道於天下 拯苦海之沈溺 救火宅之焚燒 超然立於滄海萬里 天上天下唯我獨尊之說偈矣.)” 또한 별도의 폭에는 유한지(兪漢芝)가 예서체로 관음상찬(觀音像贊)을 적어 놓았다.
이 그림은 인물 묘법과 수파묘(水波描)의 선묘(線描 : 선으로만 그림)가 뛰어난 작품이다. 행운유수묘(行雲流水描)로 능란하면서도 활달하게 그린 관음의 옷 선은 율동감이 넘친다. 마치 남해관음이 바다의 들끓는 듯한 파도가 그대로 올라온 파도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에 달과 파도의 차가운 담청색과 관음과 동자의 따뜻한 먹빛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홍도는 50대 후반 이후 신선도의 제작이 줄어들고 소품의 석화(釋畫 : 부처를 그린 그림)를 즐겨 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석화는 신선도와는 달리 탈속의 경지를 보여 준다.
김홍도의 「남해관음도」와 유사한 도상으로는 선문대학교박물관소장 「남해관음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