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도는 신선들의 모습과 그 설화를 묘사한 도석 인물화이다. 그림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진 신선은 종리권·여동빈 등 8선이다.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도도 많이 그려졌다. 이들은 대개 장수와 복록을 의미하는 상징물과 함께 그려졌다. 그리고 각각 도상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신선도는 17세기에 본격적으로 성행하고 조선 후기에 크게 발전하였다. 특히 김홍도의 신선도 화풍은 장승업 등을 통하여 조선 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작품으로 김명국의 「수노인도」, 심사정의 「하마선인도」, 김홍도의 「군선도」 등이 있다.
유 · 불 · 선 가운데 선교(仙敎), 즉 도교의 신선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되었다. 장수무병(長壽無病)한 생에 대한 애착, 현세 기복적(現世祈福的)인 염원과 밀착되어 성행하여 축수(祝壽) 축복(祝福)용(祝壽祝福用)으로 많이 그렸다. 여러 신선전에 등장하는 신선들은 500여 명이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림의 소재로 많이 다루어졌던 대표적인 신선은 종리권(鍾離權) · 여동빈(呂洞賓) · 장과로(張果老) · 한상자(韓湘子) · 이철괴(李鐵拐) · 조국구(曹國舅) · 남채화(藍采和) · 하선고(何仙姑) 등의 8선이다. 그리고 노자(老子) · 황초평(黃初平) · 마고선녀(麻姑仙女) · 하마선인(蝦蟆仙人) · 동방삭(東方朔) · 서왕모(西王母) · 장지화(張志和) 등도 등장한다.
이들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장수와 복록(福祿)을 의미하는 상징물과 함께 그려진다. 그리고 각 신선마다 전기(傳記)나 그와 관련된 설화에서 파생된 도상적(圖像的)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종리권은 머리 양쪽에 상투를 틀고 배를 드러낸 채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있는 모습, 여동빈은 칼을 찬 장년의 모습, 장과로는 흰 나귀를 거꾸로 타거나 어고간자(漁鼓簡子)를 든 노인의 모습, 조국구는 관복 차림에 딱따기를 든 모습, 이철괴는 철괴를 들고 연기 나는 호로병을 지닌 남루한 거지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상자는 피리나 어고간자를 들고 있는 청년의 모습, 장지화는 물 위에 앉아 있는 술 취한 선비의 모습, 하마선인은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있는 모습 등으로 묘사된다. 이들 신선은 대개 단독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여러 명이 무리져 있는 군상(群像)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군선도(群仙圖) 중에서는 곤륜산(崑崙山)의 낭원(閬苑)에 살고 있는 서왕모가 3000년에 한 번 열리는 장수의 선과(仙果)인 반도(蟠桃)의 결실을 기념하여 연 반도 연회(蟠桃宴會) 장면과, 여기에 참석하기 위하여 여러 신선들이 파도를 건너는 장면이 함께 묘사되는 반도회도(蟠桃會圖), 바다 위에 떠 있는 군선들의 행렬이 독립적으로 그려지는 파상군선도(波上群仙圖), 수노인(壽老人)을 첨앙하는 군선들을 묘사하는 군선경수도(群仙慶壽圖)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많이 그려졌던 신선도로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인 남극성(南極星)을 인격화하여 표현한 수성도(壽星圖)가 있다. 수성도는 수노인도(壽老人圖) 또는 남극노인도(南極老人圖)라고도 한다. 수노인은 작은 키에 긴 수염과 정수리가 불룩 솟아오른 벗겨진 머리 그리고 발목까지 덮는 도의(道衣) 차림에 사슴을 동반하거나 두루마리 책을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신선도들은 남북조시대에 등장하여 당대까지는 인물화로서 분류되다가, 북송 때부터 도석의 화목으로 취급되었다. 그리고 남송대에 이르러 감필법(減筆法)의 선종(禪宗) 인물화법이 가미되며 발전하였다. 이어서 원대의 안휘(顔輝)에 의하여 화법상으로 진전되었다. 명대(明代))에는 오위(吳偉) · 장로(張路) 등 절파(浙派)계 화가들과 구영(仇英)과 같은 화가들이 많이 그렸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신선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독립된 화목으로의 대두는 고려시대부터이며, 본격적인 성행은 조선시대 중기인 17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조선 중기에는 김명국(金明國)을 비롯하여, 절파풍을 구사하였던 화가들에 의해 신선도가 주로 그려졌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후기로 이어져 심사정(沈師正)과 윤덕희(尹德熙) 등의 선비 화가들과 김홍도(金弘道) 등 직업 화가들에 의하여 크게 발전되었다. 특히, 신선도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던 김홍도의 화풍은 김득신(金得臣) · 이수민(李壽民) · 이재관(李在寬) · 장승업(張承業) 등을 통하여 조선 말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작품으로 김명국의 「수노인도」(日本 大和文華館 소장), 심사정의 「하마선인도」( 간송미술관 소장), 김홍도의 「군선도」( 호암미술관 소장), 전(傳) 김홍도의 「파상군선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수노인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득신의 「신선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수민의 「하마선인도」(간송미술관 소장), 장승업의 「신선도」(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