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경군고(高麗京軍考)」(『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李丙燾博士華甲紀念論叢)』, 1956) 이래 발표한 9편의 논문과 새로운 논문 4편을 정리하여 1968년 일조각에서 간행하였다.
Ⅰ. 예비적 검토, Ⅱ. 고려 경군 연구, Ⅲ. 고려 주현군 연구, Ⅳ. 고려 주진군 연구, Ⅴ. 결론―고려사회와 군반제(軍班制)―의 5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 13편의 논문이 장별로 수록, 일관된 체계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먼저 서설로서 고려 초기의 군사제도에 대한 후대의 엇갈리는 각종 견해를 검토하였다. 또한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기록인 『고려사』 병지(兵志)를 분석·고찰, 고려시대 초기 사료의 정확한 해석과 체계화를 통해서만 고려의 군사제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다음으로 본격적인 고찰에 들어가, 고려의 군사제도를 경군(京軍)·주현군(州縣軍)·주진군(州鎭軍)의 3범주로 구분하고 먼저 경군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고려 초기의 중앙군이었던 경군이 이군육위의 조직으로 정비되는 과정, 군인으로서의 사회적 지위 및 그들이 지는 군역(軍役)에 대해 살폈다.
경군은 태조 왕건(王建)의 직속군(直屬軍)에 그 뿌리를 둔 조직으로서, 군반씨족(軍班氏族)이란 전문적인 군인층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전시과(田柴科)에 포함되는 군인전(軍人田)을 받고, 군호연립(軍戶連立)에 의해 신분과 토지를 세습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고려 초기의 군사제도는 결코 부병제(府兵制)가 아니었다고 강조하였다.
주현군에 대해서는, 그 성립 과정을 지방 호족이 지배하던 병력을 중앙정부가 흡수하는 면과 중앙으로부터 지방에 배치된 군대가 지방군화하는 면의 두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그리고 주현군의 실태를 따지고 들어가, 경군과는 별도의 체계 속에 존재한 지방군의 하나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원칙에 따라 남방(南方) 5도의 장정 대부분을 망라한 민병(民兵) 조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에 비해 양계(兩界)에 배치된 지방의 국방군으로서의 주진군은 태조 때 요새지에 설치된 진(鎭)과 진수군(鎭戍軍)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며, 그들의 구성 요소는 여러 가지지만, 크게 보아 둔전군적 성격(屯田軍的性格)을 가졌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고려군사제도는 다원적이고, 농민과 구분되는 군반씨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부병제가 아닌 군반제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고려사회에서 군인(경군)은 군역을 세습하는 전문적 군인으로서, 지배층인 귀족 관료와 피지배층인 농민의 중간에 위치하는 신분적 지위를 가진다고 보았다.
이 책의 특징은, 군사제도를 부대조직(部隊組織)과 같은 형식적 제도보다는 군사조직의 바탕이 되는 인적 구성(人的構成) 문제에 치중하여 추구함으로써 군제사를 사회사로 지양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군사제도와 관련해 토지제도·신분체제·지방제도 등 폭넓은 문제들을 추적, 고려사회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넓히는 데 획기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종래에 널리 통용되어 온 고려부병제설을 철저히 비판하고, 군반제라는 독특한 군사제도를 제시한 점도 두드러진다. 부병제설을 부정한 데 대해 강진철(姜晋哲)이 비판적 견해를 나타내어 부병제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