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지방제도의 연구 ()

근대사
문헌
1977년 하현강의 고려시대의 도제(道制) 및 서경(西京)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제도에 관한 학술서.
정의
1977년 하현강의 고려시대의 도제(道制) 및 서경(西京)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제도에 관한 학술서.
개설

한국연구원에서 『한국연구총서』 제32집으로 간행하였다. 저자가 이미 발표했던 3편의 논문을 종합, 보충하여 엮은 것으로 서론과 결론을 포함해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8년에는『한국중세사연구(韓國中世史硏究)』의 제명으로 수정 보완하여 일조각에서 간행하였다.

내용

내용의 대략은, 먼저 고려 초기의 지방 통치를 지방 호족세력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책 강화라는 관점에서 개괄적으로 고찰하였다. 그런 다음, 995년(성종 14)에 실시되는 10도제(十道制)는 외형적으로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순찰(巡察) 또는 감찰(監察) 구획에 불과한 것일 뿐 행정구역은 아니었으며, 오래지 않아 생소한 이 제도는 소멸되었음을 밝혔다.

이어서 1018년(현종 9)에 성립되는 4도호부(四都護府)·8목(八牧) 중심의 주목제(州牧制)가 고려 지방제도의 실질적인 근간이 되었고, 종래에 고려 지방제도를 거론할 때 중시되어 온 5도양계(五道兩界) 체제의 5도는 고려 초기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고려 후기 고종 무렵부터 자리잡기 시작하였다고 보았다.

또한 5도에 파견되는 안찰사(按察使)도 도(道)의 최고 행정책임자로 파악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고려의 지방통치는 각 지방의 배타적인 지방 세력으로 인해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따라서 지방제도는 체계화되지 못한 미숙한 것이었음을 지적하였다.

끝으로, 서경의 행정조직과 정치적 의미를 추구하여, 당초 중앙정부와 대등하던 서경의 관제가 점차 축소되어 토관제(土官制)로 변질되는 과정과 이유를 논증하고, 역대의 왕들이 왕권 안정을 목적으로 개경(開京) 세력에 대립, 견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서경 세력을 성장시키도록 서경경영에 주력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상과 같은 연구 성과는, 종전에 『고려사』 지리지의 서술 체계에 의해 막연히 5도양계 중심으로 이해되던 고려 지방제도의 근간이 주목제였음을 분명히 해주는 한편, 서경 문제에 대해 북진정책이나, 도참사상(圖讖思想) 이외에 고려왕실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추이라는 시각에서 검토될 수 있음을 시사해 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고려의 복잡 다양한 지방통치 체제의 작은 한 단면만을 다루었으며, 그 실체 파악에 있어서도 연구, 보완되어야 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성을 지닌다.

참고문헌

『한국중세사연구(韓國中世史硏究)』(하현강, 일조각, 1988)
「서평(書評) 하현강저(河炫綱著) 고려지방제도(高麗地方制度)의 연구(硏究)」(민현구, 『역사학보(歷史學報)』 80, 1978)
집필자
민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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