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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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오이소시[大磯市] 고려산(高麗山)에 있었던 고구려계 이주민들이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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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오이소시[大磯市] 고려산(高麗山)에 있었던 고구려계 이주민들이 창건한 사찰.
내용

원래는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사상으로 인하여 고구려왕족의 후예들이 세운 고려신사의 경내에 있었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8세기경 법상사(法相寺)의 한 승려가 천수관음보살상(千手觀音菩薩像)을 봉안하고 창건하였다는 설과 다카노조[鮹之丞]라는 어부가 오이소의 앞 바다에서 그물로 천수관음보살상을 건진 뒤 고려산에 안치하기 위해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고구려 왕족인 약광(若光)의 일족이 이주해 와서 개척하고 정착한 곳이며, 이곳의 지명과 신사명이 ‘고려‘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사찰의 창건 또한 고구려의 유민들에 의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는 장군(將軍)의 집안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의 신도가 되었는데, 1192년 고시라카와왕[後白河王]의 49재와 1주기 재를 이 절에서 지냈다.

그리고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도 이 절을 지극히 중요시하여 고려산과 전지(田地) 100석(石)의 밭을 사원에 영지(領地)로 주고 경내를 신성한 지역으로 정하여 보호하였다.

그러나 메이지시대(明治時代)에 이르러 유신정부의 강력한 신불분리(神佛分離)의 정책으로 절은 폐사되었고, 현재는 고려신사만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日本の中の朝鮮文化』(金達壽, 講談社, 1983)
『續風土記』-歸化人と社寺-(今井啓一, 綜藝舍, 1973)
집필자
노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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