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543년(중종 38) 심광형(沈光亨)이 만년에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웠는데, 그 후 증손 청안현감(淸安縣監) 민각(民覺)이 쇠락한 정자를 옛터의 아래로 옮겨 새로 건립하였고, 다시 5대손인 세익(世益, 호는 浩然亭)이 중수하였다. 세익이 두 아우와 우애가 매우 돈독한 것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칭송하여 ‘호연정’이라 별칭을 붙였다.
이곳은 강변의 구릉지로 수림(樹林)의 풍광이 좋아 방백(方伯:관찰사) 등이 향음례(鄕飮禮)를 베풀거나 시인묵객들이 시를 짓고 읊던 곳으로, 안에는 기문(記文)과 시문(詩文) 등이 적힌 15개의 편액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80년에 중수한 것이며, 이곳에서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심광형이 후학을 위해 1520년대에 건립한 곡성 제호정 고택(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함허정은 남동향으로 자리잡았는데, 전방은 천마봉(天馬峯)을 향하여 자리잡고, 후방은 섬진강과 평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면은 가운데 방을 배치하고 사방에 툇마루를 돌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방은 정면에서 보았을 때 가운데 2칸과 오른쪽 1칸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얼핏 3칸으로 보인다. 건물의 우측면에는 바닥 난방을 위한 아궁이를 두었다.
누마루는 그 폭이 각기 다르며, 기둥 간격도 정면 협간(夾間)은 크게 하고 중앙간은 작게 하였다. 구조는 목가구 형식으로 평탄한 대지 위에 외벌대의 낮은 기단을 흙다짐한 후 덤벙주초를 놓고, 외진주(外陣柱)는 원주를, 내진주(內陣柱)는 방주를 세웠다. 기둥 높이의 차가 없어 대들보는 전면 평주에서 후면 평주까지 길게 걸쳐 얹고 있다.
주두(柱頭) 결구는 주두 밑에 창방(昌枋)과 보아지를 교차로 끼우고 주두 위에 장여와 들보를 두었으며, 주간(柱間) 창방 위에는 장여 사이에 소로[小累]를 낀 간결한 구조이다. 벽은 심벽(心壁 : 기둥의 중심부에 흙벽을 쳐서 벽면보다 내보이게 된 벽) 구조로 회를 발랐으며, 창호는 모두 띠살창호이다.
온돌방 천장에는 평천장을 얹었으며, 선자연(扇子椽 : 부채살 모양으로 된 서까래)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이었다. 가구방식은 우측 단부의 청마루간에서는 충량(衝樑)을 대들보 위에 직접 얹었고, 충량 위에는 중도리를 연결한 외기(外機)와 작은 외기반자를 설치하였으며, 종량(宗樑)에는 선자연들이 모이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