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 199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640년(인조 18) 김운해(金運海, 호는 벽류정)가 건립하여, 1678년(숙종 4)과 1862년(철종 13)에 중수한 바 있다.
벽류정 내부에는 〈벽류정중수기 碧流亭重修記〉 · 〈중수벽류정상량문 重修碧流亭上樑文〉 등 11개의 편액과 각종 시문(詩文), 그리고 민규호(閔奎鎬)와 신헌(申櫶)의 글씨가 있다.
정자는 중앙 어간에 재실(齋室)을 둔 단층 유실형(有室形)으로서 전후좌우 정대칭 공간을 구성하였으며, 돌다짐식 축산(築山) 위에 낮은 외벌대의 허튼층 기단을 쌓아 넓적한 덤벙주초를 놓고 원형의 외진주(外陣柱)와 방형의 내진주를 세우고 있다.
기둥 위에 주두(柱頭 : 대접받침) 밑에는 창방(昌枋)을 걸치고 도리와 주두 사이에는 포작(包作)을 꾸몄는데, 쇠서[牛舌]에 연화각(蓮花刻)을 얹은 무출목(無出目) 초익공을 창방과 직교 짜임하고, 기둥 내부에는 초각장식이 화려한 보아지를 두었다.
또한 모서리기둥[隅柱]의 포작도 양면성을 갖도록 하였고, 기둥 사이의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여 사이에는 태극 혹은 귀면(鬼面) 형상의 화반(花盤 :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이 설치되는 등 장식성이 강하다.
특이한 것은 중재실(中齋室)의 내진 4고주는 무량결구(無樑結構)로 보 대신 인방(引枋)을 ‘井’자형으로 길게 걸어주고, 그 인방들은 4고주에 매입하지 않고 중심을 비켜 이음하고, 들보를 결구하듯 처마도리의 장여에 결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문은 4면 모두 2분합 들어열개문으로 하여 재실의 사방을 개방할 수 있게 하였고, 재실 천장은 널반자로 대고 보꾹층을 두고 있다. 바닥은 마루를 깔았으나, 후면 툇마루를 1단 높여 설치한 것으로 보아 함실(函室)을 둔 온돌이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