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199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평군읍지 南平郡邑誌》에 의하면, 조선 중엽 판서를 지낸 서지(徐祉)가 창건하여 무송정(茂松亭)이라 하였는데, 그후 쾌심정(快心亭)·영평정(永平亭)으로 개칭하였다가 중건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되어 중수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다.
이 정자는 사면 개방한, 방이 없는 누마루로서 정면 어칸은 좁게, 협칸은 넓게, 측면은 등간(等間)으로 기둥을 세웠으며, 구조는 평탄한 대지 위에 외벌대의 낮은 허튼층 기단을 쌓아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초공(草工)을 두어 대들보를 받고 주심도리(柱心道理)를 얹어놓았다.
주두(柱頭 : 대접받침)의 결구는 평방(平枋)과 창방(昌枋) 위에 연화문(蓮花文)을 초각한 무출목(無出目) 2익공 쇠서와 초각새김한 보아지를 두었고, 평방과 장여[長舌]사이에는 소로[小累]를 설치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지붕은 부연(附椽 : 처마 끝에 덧얹어 건 짤막한 서까래)을 단 선자연(扇子椽) 겹처마이다. 가구구조는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치고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운 다음, 종량(宗樑)을 얹고 초각새김한 판대공(板臺工) 위에 종도리를 받친 7량가를 이룬다.
또한 동자주에 가로지른 뜬 창방이 설치되었고, 협간에는 충량(衝樑)이 대들보에 걸쳐지며 종도리를 연결하여 외기(外機)반자가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