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옛 광주읍성의 남문 안 대황사(大皇寺)라는 사찰의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도청 앞 무덕전(武德殿)의 앞마당 담장 안으로 옮겨왔으며 1968년금남로(錦南路) 확장공사로 무덕전 건물이 개축되면서 현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석등의 조영시기는, 8각석주로 간석(竿石)을 세우는 기법과, 간주(竿柱)에 명문을 새기는 기법으로 볼 때 ‘大安九年(고려 선종 10년, 1093)’명이 있는 나주서문석등(羅州西門石燈, 현 경복궁 소재)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간주 명문에 나타난 ‘聖壽天長□□戊辰□五(성수천장□□무진□5)’의 무진년은 1028년, 1088년, 1148년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석등은 8각간주형으로 기대부와 상륜부가 다소 결실된 상태인데, 지대석 위에 지복석(地覆石)이 멸실된 채 하대하석(下臺下石)이 올려지고, 그 위에 8엽복련화문(八葉伏蓮花文)을 새긴 하대석이 놓였으나 마멸이 심하다.
하대석 위에는 긴 8각간주를 세우고 상대석으로 8엽앙련화문(八葉仰蓮花文)의 상대석을 올렸으며 간판(間瓣)은 꽃술형이다. 상대석 위에는 두툼한 화사(火舍) 받침 위에 8각 화사석을 올렸으며 화사석 사면에는 불을 밝히는 장방형의 화창을 설치하였다.
상대석 위에는 상대보다 작은 8각 옥개석을 올려 등신(燈身)을 마감하고 있다. 옥개석 상부의 상륜부에는 복발(覆鉢)과 앙화(仰花)가 통석재(通石材)로 올려졌으며, 보주(寶株)는 다른 석재로 보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