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궁실조에 따르면 1450년(세종 32) 군수 이인(李茵)이 건립하였다고 하나, 1547년(명종 2) 부사 오성(吳誠)이 건립하였다고 전하기도 하여 확실한 창건 시기는 불분명하다.
『승주문헌집(昇州文獻集)』에 있는 낙안객사의 상량문에 따르면, 1631년(인조 9)에 군수 정원필(鄭元弼), 1859년(철종 10)에는 이명칠(李明七)에 의해 중건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09년 이후 낙안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되어 내외부가 많이 변조된 것을 1983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밖에 『중간승평지(重刊昇平誌)』(1729년)와 『낙안읍지(樂安邑誌)』(1901년)에는 낙안읍성과 함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배치된 객사의 건물도가 보인다.
객사는 좌향이 남향인 단층 一자형 평면으로서 앞뒤 마당을 둔 본관은 삼문과 일직선축을 이루며 배치된다. 본관 평면은 유실형(有室形)으로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인데, 중앙에 정당(正堂)과 좌우에 익사(翼舍)가 서로 연결된 정대칭 구성을 이룬다.
기단은 축대를 앞마당보다 1단 높게 바른층으로 쌓아올리고, 양 측면과 후면은 같은 높이로 낮은 외벌대를 둠으로써 앞마당과 위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초석은 큰 자연석을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으며, 그 위로 주두(柱頭 : 대접받침)를 얹어 창방(昌枋)을 걸었고 창방과 주심도리 사이에는 소로[小累]를 끼웠다.
건물 정면과 측면의 주두에는 연화문 및 닭머리문양[鷄頭文]이 새겨진 2익공포를 두었는데, 내부에는 쇠서[牛舌]를 돌출시키거나 보아지를 달았다. 그러나 후면에는 외부로 쇠서 없이 곧게 잘랐고 내부로 보아지를 달았다.
가구구조는 원형 대들보 위에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기둥)를 놓고 종량(宗樑)을 얹은 다음 파련대공(波蓮臺工)으로 종도리를 받게 한 5량가구이다. 익사의 툇마루 가구에는 용모양의 충량(衝樑)을 내진주(內陣柱) 위 장여 밑에 걸어 관아의 위엄을 보이고 있다.
정당인 중앙 6칸은 궐패(闕牌)를 모시는 청마루를 형성하고, 양 익사 4칸은 온돌방 및 마루를 형성하는데 모두 전방과 측방으로 개방하나 배면은 벽으로 막아 폐쇄시킨 구조이다.
정당의 궐패가 놓이는 내진과 외진 사이 가구에는 관아를 상징하는 홍살을 달고 있다. 익사와 정당의 연결부에는 고주를 세워 종량을 받게 하였고, 정당의 장여가 익사의 도리와 맞이음되도록 하여 지붕의 높이를 조절하였다.
또한 정당의 맞배지붕은 익사의 팔작지붕보다 더 높게 하여 솟을지붕을 이룬다. 이 밖에 문간채는 정면 3칸 대문과 좌우 측면 1칸씩의 방이 배치되고 솟을지붕을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