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이며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장군의 유적이다.
용산재는 1589년(선조 22)에 창건되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모두 불타고 사우와 위패만 남았으나 1603년 전라도 관찰사 한준겸(韓浚謙)의 주선으로 신실(神室)이 중수되었다. 1655년(현종 6)에 서원의 규모를 모두 갖추어 중건하였고, 이어 1673년과 1678년(숙종 4) 후손들이 중수하였으며, 1695년 조정에서 사액을 하여 치제(治祭)하게 하였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으나, 1934년 덕양서원을 복원하였으며, 1968년과 1976년에 중수하였다. 1985년에는 사우를 보수하고, 1989년 신덕재(愼德齋)·연서재(燕序齋)·강당·외삼문 등을 새로 개축하여 신씨문중과 호남유림들이 춘추로 제향하고 있다. 경내 기적비각(紀績碑閣)은 1881년(고종 18)에 세워졌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덕양강당과 신덕재·연서재가 강학공간을 이루고,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을 지나면 묘역인 덕양사가 자리잡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외삼문과 강당·내삼문, 그리고 덕양사가 일직선상에 중심축을 이루고, 좌측에는 서재(西齋)에 해당하는 모충재가 위치하며, 우측에 동재(東齋)에 해당하는 신덕재가 자리잡고 있다. 모두 최근에 새롭게 중수한 건물들이다.
용산재가 있는 목사동면 구룡리는 장절공이 태어난 곳으로 덕양사와 함께 후손들이 제향하고 있는 곳이다. 1897년 장절공의 유허비를 세웠으며, 1929년에 장절공의 태(胎)를 묻었다는 곳에 단을 모은 용산단(龍山壇)을 세우고, 1960년 용산재와 구룡문(九龍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