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시징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목릉참봉, 왕자사부,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학자.
이칭
경숙(敬叔), 지숙(智叔)
경한재(景寒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44년(인조 22)
사망 연도
1713년(숙종 39)
본관
청주(淸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왕자사부|이인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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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목릉참봉, 왕자사부,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학자.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숙(敬叔) 또는 지숙(智叔), 호는 경한재(景寒齋). 세거지는 목천(木川). 아버지는 사헌부집의 곽지흠(郭之欽)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도사(都事) 김옥(金鋈)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송시열의 천거로 참봉이 되었으나, 기사환국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었다. 송시열이 제주도에 안치(安置)되자 여러 문인들과 함께 그 원통함을 상소하였고, 스승이 사사된 뒤 태안(泰安)에서 두문불출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1694년(숙종 20) 목천의 옛 집으로 돌아와 도(道)를 강론하는 여가에 산수를 즐기며 자적(自適)하였다. 1703년 목릉참봉(穆陵參奉)에 임명되고, 이어 왕자사부(王子師傅)로 연잉군(延礽君: 英祖)을 가르쳤다. 그뒤 별제(別提)·이인찰방(利仁察訪)을 역임하고, 만년에는 공주에 거주하였다. 그는 특히 예서를 깊이 연구하였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숙종실록(肅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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