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안정복(安鼎福)이 지은 악부시(樂府詩). 영사악부체(詠史樂府體) 한시 5수로 ≪순암집 順菴集≫ 제1권에 수록되어 전한다. 작품은 <성기가 成己歌>·<옹산성장가 壅山城將歌>·<천성행 泉城行>·<노사행 弩士行>·<백마총행 白馬塚行>이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서문에 이익(李瀷)의 악부인 <해동악부 海東樂府>로부터 영향을 받아 지었다. 그리고 고구려 성기(成己) 등의 사적이 빠져 있는 것을 보완한다고 하였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성기가>는 한무제(漢文帝)가 위만조선을 멸할 때 마지막까지 저항한 성기의 사적을 잡언(雜言) 15행으로 다루었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옹산성장가>는 옹산성에 은거하다 김유신(金庾信)에게 함락되어 죽음을 당한 백제 장병들을 잡언 18행으로 다루었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천성행>은 신라 문무왕 15년(675)에 당나라의 설인귀(薛仁貴)에 맞서 승리한 신라 문훈(文訓)의 사적을 잡언 18행 속에 다루었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노사행>은 고구려 영양왕 25년(614)에 수나라 임금을 작은 활로 쏘아 수군을 물리친 무명인의 사적을 7언 18행 속에 다루었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백마총행>은 왜(倭) 오진(應神) 22년(289)에 신라병이 아카시우라(明石浦)를 공략하자 왜가 오사카(大阪) 근처에 백마를 죽여 화해의 신표로 삼았던 사적을 다루었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성기가>·<옹산성장가>·<천성행>·<노사행>앞의 네 작품은 국난기의 영웅을 찬미하였다. 마지막 <백마총행>은 왜적에 대한 적개심을 담아 내었다.
이들 작품에는 민족주의적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이 점은 이익의 <해동악부>가 유가적(儒家的) 문명사관(文明史觀)의 관점에서 민족문화의 제 단계를 시가로 형상화하고자 한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관동사유감효악부체오장>의 <성기가>의 일부는 “우리 고을이 다 짓밟히고 서울도 기울어, 저마다 모두 적에게 나라를 팔자할 뿐. 나라 안위가 대신에게 달렸소, 피눈물을 쏟으며 외론 성을 지켰네. 외론 성의 운세는 터럭 끝에 달린 양 위태하였으나, 여기서 죽음을 터럭보다 가벼이 여겼어라(諸縣幅裂王都傾 但見紛紛賣國賊 安危却有大臣在 沫血飮泣守孤城 孤城勢急危如髮 到此一死鴻毛輕).”이다.
이 글에 이어서 안정복은 성기의 죽음을 두고 동국역사서에서 ‘주(誅)’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체적인 관점에서 재평가하여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