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고종 27) 경에 조병균(趙秉均)이 지은 금강산 기행록. 2권 1책(46장). 한문필사본. 조병균의 금강산 유람기는 국문본 ≪금강록≫으로도 전한다. 이 <봉래일록>은 국문본보다 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내용도 상세하다. 또한 여행 중에 지은 한시 103수와 여행을 마치고 지은 부(賦) 1수를 수록해두었다.
≪봉래일록≫의 책머리에는 1890년 8월 초순에 창애(滄厓) 이문영(李文榮)이 쓴 서문과 동년 9월 9일에 초정(蕉庭) 이헌영(李憲榮)이 쓴 서문이 있다. 이어서 조병균이 쓴 <동유금강서 東遊金剛序>와 <금강산총론문 金剛山總論文>이 있다. 그 뒤에 목록이 있다.
≪봉래일록≫의 ‘회양내산(淮陽內山) 장안사(長安寺) 소속(所屬)’ 제목 아래에 절·누·대·지명 등의 55개의 고유명사를 기록하였다. 이어서 ‘회양내산 표훈사(表訓寺) 소속’ 제목 아래에 71개 고유명사, ‘고성외산(高城外山) 유점사(楡岾寺) 소속’ 제목 아래에 63개 고유명사, ‘고성외산 신계사(神溪寺) 소속’ 제목 아래에 82개 고유명사를 나열하였다.
≪봉래일록≫의 본문은 ‘봉래일록 상’ ‘봉래일록 하’ ‘동정부(東征賦)’로 되어 있다. 권말에는 1890년 11월에 오당(寤堂) 윤성선(尹聖善), 설봉(雪峰) 은이채(殷以埰), 조병균이 쓴 발문이 있다.
<봉래일록 상>은 조병균이 1890년 5월 13일(신사)에 장마가 걷히자 친구들과 언약하여 두었던 대로 금강산 여행을 위한 행장을 꾸려서 개운사로 나와 하룻밤을 묵는 일로 시작된다. 마지막 부분은 6월 3일(신축)에 내금강에서 마하연(摩訶衍)을 구경한 기록이다. 산문체로 적혀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한시 53수가 곁들여져 있다.
<봉래일록 하>는 6월 3일 오전에 마하연을 떠나 안문령(雁門嶺)에 이른 일부터 시작하여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견문을 산문과 한시 50수로 기록하였다. <동정부>는 노정에서 보았던 승경과 지명·암석·누대 따위를 일일이 나열하였다.
≪봉래일록≫은 조선 후기에 발달한 장편 기행록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조 말엽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문헌적 자료가 된다. 연세대학교 도서관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