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별곡 ()

고전시가
작품
1820년(순조 20)구강(具康)이 지은 기행가사.
정의
1820년(순조 20)구강(具康)이 지은 기행가사.
개설

가사집 『북새곡(北塞曲)』에 수록되어 전한다. 지은이가 1819년 강원도 회양부도호사(淮陽府都護使)의 관직을 받고 회양 현지에 부임하여 1년여간 머물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룬 작품이다. 가사작품 명칭은 회양의 옛 지명 교주(交州)를 취한 것이다. 모두 192구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

지은이가 왕명을 받고 감동하여 출발하게 되는 대목을 서두로 시작하여 회양 현지에 부임하여 보고 겪은 사연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대목으로 맺고 있다.

회양지역은 금강산(金剛山)을 비롯하여 경관이 수려한 명승지가 즐비해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현지 백성들이 삶을 영위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산악지대의 협소한 농토와 척박한 토질 때문에 한정된 농산물에 의존해야 하는 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관원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와 행패는 끊임없이 자행되었다. 게다가 각처에서 모여드는 양반 탐승객들로 연일 시달려야 했던 회양지역 백성들의 탄식과 신음소리는 끊일 사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교주별곡」은 이를 안타까워하는 목민관의 심중을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영문의 별복졍은/녹각 오소리 산양피와/이외에 허다한 것/쥬ᄂᆞᆫ 갑시 변변ᄒᆞ랴/험녕쥰판 교군들은/억ᄀᆡ쉴○ 드무더라/더듸온다 ᄆᆡ질이오/적게 멘다 호령이라/북관ᄉᆞᄀᆡᆨ 낙역ᄒᆞ고/금강산이 거폐로다/이런 일 혜여보소/잔민이 견딜소냐/졔게 무엇 잇다 ᄒᆞ고/이다지 보ᄎᆡᄂᆞᆫ고/졔 살도 사람이라/피가 나게 엇디 치리”

의의와 평가

「교주별곡」에는 당시의 회양지역 백성들의 삶의 실상이 작품 전문에 생생하게 부각되어 있다. 특히 묘사하는 대상을 선택하는 면에서 독자적 특성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신축자제한 내용 구성 기법과 현장감이 생생한 묘사, 그리고 회양지역의 특색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어의 선택은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계급의식이 엄격하던 시기에, 과감하게 상하계층을 초월하여 서민편에 서서 함께 탄식하며 아픔을 함께 한 점이 새롭다. 구강이 암행어사로 함경도지역을 살피고 지은 「북새곡」과 더불어, 근대 여명기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선각자적인 의식이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북새곡(北塞曲)』
『휴휴문집(休休文集)』
『한국고전문학신자료연구(韓國古典文學新資料硏究)』(박요순, 한남대학교출판부, 1992)
「구강(具康)의 교주별곡고(交州別曲攷)」(박요순, 『한남어문학』21, 1996)
집필자
박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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