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초명은 구정(具貞). 충청도 면천(沔川) 출신.
여러 벼슬을 거쳐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며, 1354년(공민왕 3) 면천군(沔川君)에 봉해졌다. 처음에 정당문학(政堂文學) 안규(安珪)의 딸과 혼인하였고, 다시 김자장(金子章)의 딸과 혼인하여 자식까지 두었으나, 뒤에 재신(宰臣) 조석견(趙碩堅)의 미망인 장씨(張氏)와 다시 혼인하였다.
1354년 원나라의 장사성(張士誠)이 고우성(高郵城)에서 난을 일으켰을 때 원나라의 요청으로 유탁(柳濯)·인당(印當) 등과 함께 원병을 이끌고 출전하였으며, 이듬해 돌아와 부인 장씨의 추문을 듣고 절연함으로써 원한을 사게 되었다.
1356년 기철(奇轍) 일당을 숙청할 때 그 잔당을 체포하지 않았다는 원호(元顥)의 무고로 한가귀(韓可貴)와 함께 투옥되고, 이어 장씨의 외삼촌인 판사 김성(金成)의 농간으로 참살되었으며 가산도 적몰당하였다. 뒤늦게 왕이 구영검의 억울함을 알고 중지시키려 하였으나 이미 효수된 뒤이므로 시신을 거두게 하고 재산도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