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9년(공민왕 18) 천우위대장군(千牛衛大將軍)으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372년에는 대호군으로 탐라의 공마(貢馬) 50필을 명나라에 바쳤다.
그런데 1374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던 정비(鄭庇) 등이 남경(南京)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중서성의 자문(咨文)에, 1372년 김갑우가 바친 공마가 모두 타지 못할 것들이라고 하여 트집을 잡은 내용이 있었는데, 그 책임으로 함께 다녀온 역관 오극충(吳克忠)과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