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광덕리 석조 보살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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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이칭
이칭
금릉 광덕동 석조보살입상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金泉 廣德里 石造菩薩立像)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보살상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0년 09월 16일 지정)
소재지
경북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산71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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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보살상.
내용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02m.감문면에는 속칭 숫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 저수지의 뚝 밑에 보살상이 세워져 있다. 하단부가 흙 속에 묻혀 있었으나 현재 발굴되어 연꽃대좌에 서 있는 불상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보존상태는 양호하여 아직도 조각이 선명한 수작(秀作)이다.

광배는 원형의 두광과 신광이 따로 얕게 부조되어 있으며 머리에는 장식이 화려한 높은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이 관에는 삼산형(三山形)으로 구슬을 단듯한 둥근 원을 양각한 무늬가 새겨졌고 관대가 길며 수식(垂飾)의 일부인 돌기가 양측면에 표현되었다. 이러한 점은 10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한송사지 및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높은 관 형식과 상통하는 특징이다.

눈은 반쯤 뜨고 있으며 눈꼬리가 길고 눈의 위·아래에 선이 깊이 패어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의 눈과 유사하다. 코와 입은 잘 정돈된 단아한 표정을 이루며 귀 역시 손상을 입지 않아 길게 남아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졌고 천의는 여래의 통견의(通肩衣)와 같은 형식으로 양어깨에 걸쳤다. 마애조각이어서 여건이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옷주름의 표현이 자연스럽고 커다란 연꽃을 든 손과 손가락도 사실적으로 조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보살상의 착의법(着衣法)과 긴 대가 달린 관의 형식, 둥근 어깨 등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 초기 10세기 경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석불 돌에 새긴 정토의 꿈』(글 최성은, 사진 안장헌, 한길사, 2003)
『문화재대관』5 보물 3(한국문화재보호협회,대학당,1986)
「여래형 복식착용 보살상의 등장과 전개」 - 청담사지 자씨각 보살상을 중심으로 -(정성권, 『동악미술사학』 22, 동악미술사학회, 2017)
「금릉광덕동마애보살입상」(정영호,『고고미술』99, 한국미술사학회,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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