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181㎝.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앞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데, 근처의 평창 월정사 석조 보살 좌상(보물, 1963년 지정), 개태사 석조보살좌상(머리 부분 결손)과 함께 고려 초에 조성된 독립 공양상으로서 주목된다.
이 보살상은 강릉 한송사지 석조 보살 좌상(국보. 1967년 지정)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 있기 때문인지 관은 높이도 낮고 약간 뒤로 젖혀진 모습이다. 관의 표면과 관 위의 천개 안쪽에 커다란 구멍들이 있는데, 금속 장식을 달기 위하여 뚫었던 듯하다.
부드럽고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입을 안으로 꼭 다문 천진한 모습은 예천 청룡사 석조 여래 좌상(보물, 1965년 지정)의 입 모양과 흡사하다. 눈썹은 초승달 같은 곡선을 이루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의 양 끝에 구멍이 뚫려 있어 금속제 귀걸이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편평한 목 위에 선각(線刻)으로 층을 이룬 삼도(三道)를 새겼고 무늬 없는 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두꺼운 천의를 어깨와 가슴에 둘렀다. 왼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모아 쥔 두 손은 가슴에 꼭 붙이고 있으며 손에 뚫린 큰 구멍에는 지물(持物)의 손잡이였던 금속주(金屬柱)가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원형의 대좌받침이 있는데, 안이 움푹한 원래의 연화대좌에 이것을 끼워 넣게 되어 있다. 현재 대좌받침의 앞부분이 없어졌다. 대좌 위에는 두 개의 금속주가 있어 원래는 대좌받침 촉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대좌가 정확히 맞추어져 있지 않아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연화좌 밑에는 폭이 좁은 중대석이 있고 거기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넓은 팔각형의 지대석이 묻혀 있으며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하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풍만한 신체와 다정한 얼굴에서 상당히 인간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반타원형으로 조각된 보발(寶髮)이나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누어진 옷주름 등에서 약간 형식화된 점이 발견된다. 같은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제작된 한송사지 보살좌상이 보여주는 신라적인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양식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릉 한송사지 보살좌상, 평창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과 함께 고려 초기에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고려전기 11세기무렵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