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간 ()

유교
인물
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이칭
백고(伯顧)
금강(錦江), 인재(忍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0년(중종 25)
사망 연도
1593년(선조 26)
본관
행주(幸州)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개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백고(伯顧), 호는 금강(錦江)·인재(忍齋). 아버지는 호조판서로 추증된 고흥군(高興君) 기대유(奇大有)이며, 어머니는 함양오씨(咸陽吳氏)이다. 기효근(奇孝謹)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의 문인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일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후진양성에 주력하여 호남의 은덕군자(隱德君子)로 불리었다.

특히, 김인후가 그에게 지어준 “우주의 중간에 두 분이 있는데, 공자는 원기(元氣)이고, 주자는 참됨[眞]이다.”라는 시는 도를 전해받은 시로 알려졌다.

동문인 김천일(金千鎰)·정철(鄭澈)·변이중(邊以中) 등과 교유하였으며, 그의 문하에서 오희길(吳希吉)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스승 김인후가 죽은 뒤에 서태수(徐台壽)·변이중·변성온(卞成溫)·변성진(卞成振) 등과 사우를 짓는 일에 참여하여 제자의 직분을 다하였다. 죽은 뒤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장성의 추산서원(秋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노사집(蘆沙集)』
『대산집(臺山集)』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
『전고문헌(典考文獻)』
집필자
박석무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